정치권에선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으레 「국감 장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일부 의원들이 건전한 국정감시와 정책대안이라는 본래의 국감 정신에서 벗어나 「구린내」가 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 단체 등과 유착, 「검은 돈」을 받는 장사를 한다는 얘기다.
국감기간은 대체로 20일(이번에는 18일로 축소)이지만 1개월간의 국감준비기간을 포함하면 50여일간 이같은 판이 벌어진다.
이 기간중 국회 의원회관은 정부 각 부처와 기업 관계자들의 방문으로 대성황을 이루고 「뒷거래」나 「금품수수」 「선물공세」가 은밀히 행해진다.
이 때문에 국감은 법안심사 예산심의 등 여러 상임위 활동 중 연중 「최대 대목」으로 손꼽힌다.
「국감비리」의 전형은 한보사태에서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른바 「국감질의 무마」 로비다.
지난해 국감 때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총회장은 『국민회의 의원들이 한보의 여신 및 담보현황 등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구해왔다』며 평소 교분이 두터운 신한국당 정재철(鄭在哲)의원에게 로비를 요청했다. 이에 정의원은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의 측근인 권노갑(權魯甲)의원에게 한보자금 1억원을 전달하며 『국감질의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로비사슬에 걸려든 권의원은 결국 구속기소돼 「포괄적 뇌물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상태다.
그러나 금품로비는 속성상 비밀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좀처럼 사실여부가 포착되지 않는 것이 특징.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한보부도사태만 터지지 않았다면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한보사건에서 보듯이 국감로비는 당지도부나 중진, 계보보스 등을 통했을 때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 고위층을 이용하면 돈이야 더 들어가겠지만 소속의원을 통했을 때 예상되는 뒤탈이나 잡음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대 때 야당이었던 한 전직의원은 『89년 국감 때 피감기관장을 공격하자 당지도부로부터 「잘 아는 사람이니 적당히 하라」는 메모쪽지가 내려왔다』며 『이런 일은 다반사』라고 털어놓았다.
국감비리 커넥션은 통상 국감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데서 시작된다. 즉 의원들이 「돈이 될 만한」 쟁점을 선별해 소관부처나 관련기관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면 관련 공무원 등 종사자가 해당업체나 단체에 이 사실을 귀띔해준다. 그러면 업체가 알아서 손을 쓰는 「의원―피감기관―기업」간 삼각 커넥션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죄질이 나쁜 국감비리는 의원측에서 먼저 폭로위협을 가해 금품을 뜯어내는 유형으로 14대 당시 재무위 소속 박은태(朴恩台·당시 민주당)전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전의원은 93년 국감이 시작되기 전에 모 시중은행간부를 불러 『내가 당신 은행의 비리를 알고 있다. 이것을 터뜨리면 은행은 끝장』이라며 20억원의 채무보증을 면제받았다가 덜미가 잡혀 작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기업 총수를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을 요구하는 것도 애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다. 해당기업이 『우리 회장을 빼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대체로 자료제출을 요청했다가 「없었던 일」로 돌리는 데는 건당 1천만원이, 출석요구대상으로 잡았다가 빼주는 데는 건당 5천만원이 각각 「공정가」라는 게 정가의 속설.
이밖에 「치고 빠지기(히트 앤드 런)수법」 「틀니수법」 등도 있다.
「치고 빠지기」는 국감질의 전에 보도진에 배포하는 자료에 특정기업의 이름이나 기업주 이름을 적시해 해당기업체의 정보팀 비서실팀을 유인한 뒤 모종의 거래를 거쳐 실제 질문을 할 때는 기업체이름이나 기업주 이름을 빼주는 것.
지난해 국감 때도 일부 상임위에서 몇몇 의원들이 질의자료에서 재벌의 이름을 거론했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질문에서는 생략해 의혹을 사기도 했다.
반대로 「틀니수법」은 질의자료에는 핵심내용을 빼놓았다가 실제 질의시간에 비리를 거론해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일단 주변의 시선을 끈다는 점에서 위험부담도 높지만 그만큼 로비단가도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속기록만 보면 어떤 의원이 돈을 받거나 돈을 노리고 발언했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정부부처의 약점을 적당히 눈감아주면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역구 사업예산을 챙기는 것도 고단수 중의 하나다. 이 방식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각 행정부처의 국감로비도 가관이다. 의원들의 「솜방망이」 질문을 부탁하기 위해 기획관리관실장이 사령탑이 돼 국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해당 상임위소속 의원들을 배당, 갖은 접대를 하도록 한다. 이 때 학연과 지연이 총동원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산하기관이 많거나 기업 금융을 주로 다루는 재정경제위나 통상산업위 건설교통위 등이 속칭 「물좋은」 곳으로 분류되고 상임위배정 때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들 상임위가 매년 수박 겉핥기 식의 국감을 했다고 그렇게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피감기관을 어김없이 능력이상으로 많이 선정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감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국감은 72년 유신헌법 때 폐지됐다가 87년 헌법개정 때 부활된 이래 정부 각 부처의 「집안식구 봐주기」식 자체감사와 관료주의에 찌든 행정관행에 제동을 걸며 나름대로 국정비판과 합리적인 정책해법을 제시하는 등 크고 작은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매년 9, 10월에 연례행사처럼 국감을 치르면서 일부 의원들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피감기관과 업계의 끈질긴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도 돈 쓸 데가 너무 많은 우리나라의 정치관행과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