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파동후 李대표 캠프]必死則生 결의 활로모색 부심

  • 입력 1997년 9월 3일 20시 13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대표위원의 특보단과 보좌역 등 비서실관계자들은 3일 오전 두차례 회의를 열어 이대표의 「활로(活路)」를 모색했다. 그러나 회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김충근(金忠根) 진영(陳永) 진경탁(陳京鐸)특보는 『보좌진 모두 일괄사표를 제출해 이대표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실제로 김특보는 하순봉(河舜鳳)전실장에게 사표를 냈다. 이들의 일괄사표 움직임은 일단 강재섭(姜在涉)신임정치특보가 주재한 오찬 자리에서 제동이 걸렸으나 대부분은 아직도 마음을 다잡지 못한 상태다. 비교적 정치 경험이 일천한 이들 사이에서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나왔고 이른바 「원내 7인방」에 화살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원내 7인방」은 하순봉 서상목(徐相穆) 백남치(白南治) 김영일(金榮馹) 변정일(邊精一) 박성범(朴成範) 황우려(黃祐呂)의원 등으로 지난해부터 이대표를 도왔던 의원그룹을 지칭한다. 한 특보는 『이번 사면건의문제나 기아해법 등 이대표의 실패작은 모두 공식보좌진이 아닌 의원그룹에서 나왔다. 전, 노씨 사면 문제만 해도 비서실의 건의는 「청와대와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들어 있었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다른 보좌진은 『아무리 사전협의가 없었다 해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그렇게 이대표를 깔아 뭉갤 수 있느냐. 도대체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다는 거냐』며 청와대측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 측근은 『이대표가 아들의 병역문제 해법에서 숱한 보좌진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한점부끄럼 없다」고 일관,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이대표까지 비판하는 등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반면에 이날 핵심보좌진으로 「입성(入城)」한 강재섭정치특보 윤원중(尹源重)비서실장 등 김윤환(金潤煥)고문계열 의원들은 『앞으로는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경선직후 「찬밥」신세였던 이른 바 「허주(虛舟·김고문의 아호)계」와 이대표 측근들의 처지가 한달여만에 뒤바뀐 셈이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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