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광풍/황병태의원은 누구]3당합당 주도인물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3분


黃秉泰(황병태)국회재정경제위원장은 88년 13대 총선 때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재선의원. 관 학 정계를 차례로 넘나드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경제기획원 과장시절 朴正熙(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외자도입업무를 관장,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과장」이란 일화를 남겼다. 35세 때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를 끝으로 관직을 떠난 뒤 뒤늦게 미국 버클리대에 유학,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외국어대교수가 된지 2년만에 외국어대총장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강남갑에서 첫배지를 단 뒤 통일민주당정책위의장 등을 지내며 김대통령의 측근인물로 부상, 「좌병태(左秉泰) 우병태(右秉泰)」로 불릴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YS에게 여당으로 변신해야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시켜 3당합당을 실행에 옮기도록 한 장본인. 다변에다 자기현시욕이 강해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황위원장은 현정부 출범후 중용되리라던 예측을 깨고 입이 가볍다는 이유로 중국대사로 나갔고 대사시절에도 여전히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15대 총선 때 선거구가 통합된 경북 문경―예천에서 당선, 재경위원장으로 기용된 후 한보의 덫에 걸렸다. 〈이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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