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내부문제인 선거사범 연좌제폐지의 소급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 새해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정치적 이해타산을 위해 국가 살림살이를 볼모로 하고 있다는 비난에도 여야는 막무가내다.
선거사범 연좌제폐지 문제는 제도개선협상 과정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의 선거부정을 이유로 후보자의 당선을 무효로 하는 연좌제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논리였으나 그보다는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쉽게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제도개선협상 타결 이틀후인 11일 金重緯(김중위)제도개선특위위원장이 3당총무와 만나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4.11총선」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연좌제폐지의 적용을 배제하는 부칙을 두자』고 제안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자민련이 거세게 반발했다. 회계책임자가 1심과 2심에서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아 이 조항을 소급적용하지 않으면 의원직이 상실될 처지에 있는 사람은 현재까지 자민련 趙鍾奭(조종석)의원뿐이기 때문이다. 한명의 정치생명 때문에 정기국회가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자민련의 반발엔 감정적 요인도 없지 않다. 4.11총선후 선거법위반으로 기소된 의원이 총 10명인데 이 가운데 자민련소속만 4명이고 수사중 탈당한 金和男(김화남)의원까지 합치면 5명이나 돼 선거사범 수사에 피해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중 金顯煜(김현욱) 邊雄田(변웅전)의원은 최근 1심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2백만을 구형받아 자민련의 분위기를 더욱 경색시켰다. 현재 자민련은 「결사항전」의 분위기다. 3당체제하에서 자민련이 없이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 확실한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정치적 복선도 깔려 있다.
반면 신한국당도 이 문제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이다. 차라리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았으면 않았지 자민련 주장대로는 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11일 李洪九(이홍구)대표의 청와대주례보고 후 신한국당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뜻이 전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한국당이 내세우는 논리는 『여론이 용납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신한국당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야권에 대한 공세를 차별화, 자민련을 집중비난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여론의 비판과 자민련과의 공조사이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자민련이 국민회의에 대해 섭섭해 하는 것도 국민회의측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자민련과의 공조를 깨고 싶지 않은 분위기가 더 강하다. 국민회의는 『연좌제는 위헌이며 당연히 신법이 구법에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민련주장을 지원하고 있다.
〈林彩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