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적 공포속 강렬한 예술의 힘”

  • 동아일보

노벨문학상 헝가리 크러스너호르커이
헝가리 출신 작가로 23년 만에 수상
폐허-종말 주제, 특유의 문체로 담아… 국내에 ‘사탄탱고’ 등 6개 작품 번역
“매우 기쁘면서 평온하고 긴장” 소감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사진)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

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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