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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초록눈 아프간 소녀’ 탈레반 피해 이탈리아로

입력 2021-11-27 03:00업데이트 2021-1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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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사진
전쟁 참혹함 널리 알렸던 굴라
비영리단체 도움으로 탈출 성공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표지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소녀’ 샤르바트 굴라의 당시 표지 사진(왼쪽)과 2002년의 모습. 사진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1985년 6월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표지에 ‘아프가니스탄 소녀’라는 제목의 사진 주인공으로 등장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렸던 아프간 여성 샤르바트 굴라(49)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후 이탈리아로 도피했다고 AFP통신 등이 2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아프간 시민 굴라가 로마에 도착했다”면서 “그녀가 이탈리아로 올 수 있도록 한 것은 아프간 시민들의 피란과 그들의 수용 및 통합을 위한 정부 계획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굴라는 비영리단체들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비영리단체의 요청에 응해 굴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프간 출신인 굴라는 사진이 촬영됐던 1984년 당시 12세 나이로 파키스탄에 머물고 있었다. 1979년 시작된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수많은 아프간 사람들처럼 고아가 된 그는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있었다. 미국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가 난민촌에서 굴라를 발견해 사진을 찍었고 이듬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잡지 표지에 그의 사진을 쓰면서 굴라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아프간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로 유명해졌다. 부모를 잃은 굴라의 강렬하면서도 슬픔에 잠긴 듯한 초록색 눈동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사진에서 굴라의 모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를 연상시켜 그에게는 ‘아프간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굴라는 이후 행방이 약 17년 동안 묘연했다. 2002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팀이 자신을 다시 찾은 뒤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묻자 “신의 뜻”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법의학 전문가, 홍채 분석 시스템 개발자 등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굴라가 사진 속 소녀와 같은 사람임을 확인했다. 아프간 주요 파병국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는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 난민을 수용하는 데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프간의 첫 여성 검찰총장이었던 마리아 바시르도 9월 아프간을 떠나 이탈리아로 왔고 이달 초 시민권을 취득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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