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관에 폭행당하며 1932년 LA올림픽에 결승선 4m 앞두고 탈진 쓰러져… 기어서 9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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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우승 밑거름… ‘마라톤 개척’ 권태하 선생 아십니까]
한국인으론 처음 올림픽 출전… 지도자 변신후 손기정 물심양면 도와
2일 충주서 탄생 110주년 세미나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역주하는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김은배는 6위, 권태하는 9위를 했다. 동아일보DB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역주하는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김은배는 6위, 권태하는 9위를 했다. 동아일보DB
“올림픽 떠나는 길에 6월 14일 밤 연락선 안에서 술 취한 경관에게 맞았다.… 너무도 몹시 때리므로 올림픽이 지나기까지는 어찌 되었든 중대한 책임이 있으니 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아 ‘올림픽’이다.… 영문도 모를 매를 실컷 맞고 또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자는 권태하 한 사람뿐일까?”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권태하(1906∼1971·사진)가 1932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보낸 글이다. 일제하에서 올림픽 대표로 나섰으나 불심검문에 응하는 태도가 불량하다고 일본 경관에게 얻어맞은 조선인으로서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경관 3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경기에서의 선전만을 굳게 다짐했다. 그 무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그는 동료 김은배(1907∼1980)와 함께 마라톤에 출전했다. 그의 올림픽 경험은 4년 후 손기정(1912~2002)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권태하는 연습 때 교통신호를 위반했다며 경관에게 구타를 당하고 감기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다. 이러한 정신력은 올림픽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결승선 4m를 앞두고 탈진해 쓰러졌지만 주위의 도움을 뿌리치고 기어서 골인해 9위를 기록했다. 9만 관중은 두 번의 기립박수로 그를 기렸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손기정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손기정은 동아일보 기고에서 “내 마라톤 인생은 권 선배의 격려와 충고에 큰 자극을 받았다. 권 선배는 베를린 올림픽을 내 인생 최대의 결전장으로 설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인 충북 충주시(시장 조길형)는 2일 충주시청 탄금홀에서 잊혀졌던 권태하의 마라톤 인생을 재조명하는 ‘권태하 선생 탄생 11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연다. 내년 충주 전국체전 성공 기원을 겸해 열리는 이번 세미나에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함기용 씨, 권오륜 부산대 교수, 박귀순 영산대 교수,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간사, 김형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남중웅 한국교통대 교수가 참석한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출전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종세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이 권태하와 동아일보 및 한국마라톤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한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마라톤#손기정#권태하#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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