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저자 하퍼 리 영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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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흑백차별 고발… 인간의 양심 일깨워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이자 ‘미국적 양심’으로 사랑받는 애티커스 핀치가 남긴 불멸의 대사다. 이 소설 한편으로 미국의 국민작가 반열에 오른 하퍼 리(사진)가 20일 소설 속 가상무대 메이콤의 모델이 된 고향 앨라배마 주 먼로빌의 한 작은 교회 묘지에 안장됐다. 향년 90세.

19일 고향에서 숨을 거둔 리는 1960년 서른넷에 발표한 이 첫 소설로 1961년 퓰리처상 수상, 1966년 미국예술원 회원 발탁, 2007년 미국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소설은 1950년대부터 불붙은 미국 ‘민권운동의 경전’ 지위까지 부여받으며 세계적으로 4000만 부 이상 팔렸다. 1962년에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에 사는 여섯 살 소녀 스카우트의 눈으로 흑백 차별의 모순을 고발했다. 제목은 “사람에게 해로울 게 하나도 없는 흉내지빠귀 같은 새는 죽이지 말라”는 스카우트의 아버지 애티커스의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북미에만 서식하는 흉내지빠귀가 앵무새로 바뀌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될 위기에 처한 청년의 생명을 구하려는 애티커스의 영웅적인 노력과 맞물려 인종 차별에 대한 미국의 내면적 양심을 일깨웠다.

리는 55년간 은둔과 침묵을 지켜오다 지난해 7월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인 ‘파수꾼’을 발표해 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전작보다 먼저 쓰였지만 시대 배경은 20년 뒤인 이 작품에서 성인이 된 스카우트는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아버지 애티커스마저도 인종적 편견의 노예임을 발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영웅을 추락시켰다는 비판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편견의 무서움을 일깨웠다는 찬사가 뒤섞인 반응을 낳았다.

리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꿉동무 딜의 모델이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극작가인 트루먼 커포티(1924∼1984)와 염문설도 있었으나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20일 그가 묻힌 곳은 반평생 함께 살다가 2년 전 숨진 언니 앨리스와 애티커스의 모델이었던 아버지 애머사 콜먼 곁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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