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을 필두로 한국가요를 일본에 소개해온 일본의 음반기획자 미스 준페이 씨는 “‘헬로’의 홍보를 제게 맡겨주면 일본에 열심히 소개하고 싶지만 용필 씨가 저를 기억할는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용필 씨의 대단한 혁신이 저는 놀랍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누구보다 음악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거든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조용필의 새 앨범 ‘헬로’를 듣고 있던 일본인을 만났다. 미스 준페이 씨(62). 그는 꽤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미스 씨는 1982년 가수 조용필을 일본에 소개했다. 당시 일본 최대 음반사였던 CBS 소니뮤직에서 일본 전통음악 담당 디렉터로 근무하던 그가 조용필의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 말. “휴가차 온 한국에서 호텔 TV를 틀었는데 용필 씨가 ‘한오백년’을 부르고 있었죠. 그 강렬한 인상이 지금도 기억나요.”
전통음악을 담당했지만 조용필에게서 특별한 가능성을 본 미스 씨는 회사를 설득했다. “아무도 한국문화에 관심 갖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한국의 남자 가수가 일본에서 성공한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그는 1982년 3월 ‘조용필 일본 데뷔 기획서’를 만들었다. 당초 기획은 한국 인기가요 여러 곡을 조용필에게 부르게 하는 짜깁기식 리메이크 앨범이었다. 그해 6월 기획서를 전달하려 방한한 미스 씨는 조용필의 콘서트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바로 기획서를 수정했다. “아차 싶었죠. ‘이 사람은 아티스트구나. 용필 씨 자신의 곡으로 일본에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미스 씨는 조용필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가정교사까지 두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1982년 9월 ‘미워 미워 미워’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담은 싱글을 일본에서 냈다.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NHK의 인기 프로그램 ‘가요 홀’에 조용필이 출연하자 하루에 300∼400장씩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능성을 본 미스 씨는 일본 내 모든 대형 음반사의 인기가수 13팀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리메이크해 같은 시기에 일제히 음반을 내도록 하는 대규모 홍보작전을 펼쳤다. “1983년 말 후지TV ‘밤의 히트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에 13팀을 모두 불렀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1절은 남자 가수들이, 2절은 일본 여자 가수들이, 후렴은 용필 씨가 깜짝 등장해 불렀죠. (반응이) 폭발했습니다.” 싱글은 3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미스 씨는 1986년 초까지 조용필의 일본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했다. “처음 얼굴을 대면했을 땐 작고 귀여웠지만 그의 창작에 대한 재능과 욕심, 열정은 한국과 일본의 많은 가수를 지켜본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초기 앨범만 봐도 민요와 전통 판소리부터 엘턴 존 스타일의 음악까지 다양한 걸 시도했죠. 일본 엔카계가 엔카에만 집중할 때 한국에는 트로트를 소화하면서도 음악적 다양성과 창작력을 지닌 조용필이 존재했던 거죠. 놀라운 일입니다.”
미스 씨는 조용필 외에 김수희 정수라 김종찬 김완선 같은 한국 가수의 일본 데뷔를 도왔다. 2008∼2009년에는 아이돌그룹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의 일본 계약을 중개했다. 30년 넘게 한국 시장을 지켜본 그는 여전히 두세 달에 한 번씩 방한해 ‘제2의 조용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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