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가정 입양 中소녀, 저소득층 한인 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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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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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드림클래스’ 첫 외국인 강사 김은영 씨

2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삼성드림클래스 겨울캠프 수료식 후 김은영씨(오른쪽)가 수료생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2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삼성드림클래스 겨울캠프 수료식 후 김은영씨(오른쪽)가 수료생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크나큰 시련, 두 번의 힐링(치유), 그리고 두 번의 도전.’ 김은영 씨(24·여)는 그리 길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1989년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의사였던 어머니를 여의었다. 자신을 끔찍이 아낀 어머니였던 터라 충격도 컸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자신의 중국 이름도, 아버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마침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 목사에게 입양됐지만 한동안 잘 먹지도 않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어했다. 몸은 점점 빼빼 말라갔다. 이런 중국 소녀의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양부모의 진심 어린 사랑과 인내심이었다. 그들은 김 씨와 함께 입양한 중국인 남자아이도 친자식 못지않은 애정으로 보살폈다. 양부모의 오랜 기다림 끝에 김 씨는 조금씩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양부모, 아니 부모의 품에 안겼다. 첫 번째 치유 과정이었다.

김 씨의 두 번째 ‘힐링 캠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4년 전 양부모와 처음으로 떨어져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받기만 하다 남에게 뭔가를 주려는 뜻에서 교육자의 꿈을 품고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27일 만난 김 씨는 “중국의 대학 학부과정에 교육학과가 없어 한국행을 택했다”며 “한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이 나에게 또 한 번 치유의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아직 그의 한국말은 조금 어눌하고 느린 편이다. 교생실습을 나갈 때 “한국말로 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 그는 용기를 내 학과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육봉사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양부모에게서 배운 상처 치유법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한 학기 동안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각각 한 명을 멘토링한 그는 눈을 피하던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던 아이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줬다. 자신의 양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아이가 꼭꼭 묻어뒀던 가족사를 털어놓더라고요.”

두 번째 도전은 삼성그룹이 저소득층 중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삼성드림클래스 여름캠프였다. 학기 중에는 방과후 학습을 하지만 방학 때는 읍면도서 지역 아이들을 서울로 초청해 3주간 캠프 형태로 진행한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이 대상이다.

삼성은 김 씨를 처음이자 유일한 외국인 강사로 맞을 것인지 고민했다. 한국인 저소득층 아이들의 멘토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그가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김 씨는 이 우려를 없애기 위해 캠프가 열리기 한 달 전 중학교 교과서와 문제집을 샀다. 마름모부터 함수까지 낯선 한국의 수학용어를 외우고 꼼꼼하게 강의 시나리오까지 짰다. 삼성은 이런 열정을 믿고 그를 캠프 선생님으로 선정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10명을 맡아 “나도 잘 모르니 같이 공부하자”며 친구처럼 대했다. 3주간의 캠프가 끝난 뒤 치른 종합평가에서 학생들의 성적은 평균 36점 올랐다. 삼성은 드림클래스 겨울캠프에도 도전한 그를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다음 달 졸업을 앞둔 그는 3월 서울대 대학원 교육심리학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11세까지의 기억이 없다고 했던 그는 사실 딱 하나는 떠올릴 수 있다고 했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가업을 이어 남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라’고 했던 유언은 또렷합니다. 몸이 아닌 마음을 치료하는 교육자가 돼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조재환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4학년
#삼성드림클래스#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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