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님 된 김일성 별장 경호소대장

  • 동아일보

■ 탈북 14년만에 ‘번듯한 가게’낸 차광수 씨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편의점을 연 탈북인 차광수 씨가 판매대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차 씨는 1999년 탈북해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2006년 한국에 건너왔다. 김준일 기자 jikin@donga.com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편의점을 연 탈북인 차광수 씨가 판매대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차 씨는 1999년 탈북해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2006년 한국에 건너왔다. 김준일 기자 jikin@donga.com
“안녕하세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4일 편의점을 연 탈북인 차광수(가명·43) 씨다. 1999년 탈북한 차 씨는 1988년부터 13년간 북한 자강도 김일성별장 경호소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편의점을 찾는 손님에게 늘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한다. 깨끗한 테이블도 행여나 먼지가 있을까 자주 닦았다. 그는 “망해 가던 가게를 싸게 인수했다”며 “총 한 자루 들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한국에 왔으니 편의점도 살려보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모은 돈 1000만 원과 북한이탈주민 전문교육기관인 자유시민대학에서 지원받은 4000만 원으로 편의점을 열었다.

차 씨는 탈북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1등급 성분’ 출신이었다. 1999년 실수로 김일성 주석이 수여한 훈장을 땅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강제노역형을 당했다. 그는 강제노역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중국은 개도 이밥(쌀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탈북했다.

AK소총 한 자루를 들고 두만강을 건넌 차 씨는 2006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탈북 후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갔지만 받아주지 않았다”며 “이후 북한에서 받은 특수훈련을 밑천으로 중국과 미얀마를 떠돌았다”고 했다. 그는 2001년 미얀마 현지 화교 사업가의 목숨을 구해준 일을 계기로 3년간 미얀마 분쟁지역에서 게릴라 용병 간부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서 조직폭력배의 뒤를 봐주는 싸움꾼으로 살았다. 그는 “건달로 일하며 도박장 뒤를 봐주면서 부끄럽게 살았다”며 “늘 잘사는 한국에 가서 떳떳하게 돈을 벌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차 씨는 한국에 온 뒤 하나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4세 된 딸을 두고 있다. 힘들 때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보며 기운을 얻는다. 인터뷰 중에도 휴대전화로 딸의 영상전화가 걸려오자 “아빠가 열심히 일하고 들어갈게. 사랑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며 가락시장 배달부, 건물 청소 등 정직하게 돈버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창업한 만큼 남한에서 꼭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차 씨는 나눔에도 열심히 동참한다. 차 씨의 가게에는 교통사고로 장애가 있는 탈북자 후배가 일한다. 그는 “후배가 실수가 많지만 자립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며 후배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는 “개업 이후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매출이 오를 때마다 그 재미에 푹 빠져 산다”며 “물건 이름이 온통 영어로 돼 있는 것 빼곤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편의점#김일성#경호소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