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최초로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회장에 당선된 김양수 한빛맹학교 교장이 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교정에서 자신의 인생역정을설명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동굴 속 박쥐’라고 놀림받던 시각장애인이 전국 특수교사 1만7000명의 대표가 됐다. 김양수 한빛맹학교 교장(46)은 9일 전국 특수교사들의 모임인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한특총)’ 회장 선거에서 73.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 교장은 한특총 최초의 장애인 회장이자 최연소 회장이다.
김 회장은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았다. 시력이 약하게 태어나 성인 무렵 시력을 완전히 잃는 희귀병이다. 그보다 세 살 아래 남동생도 같은 병이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통 성인 무렵 나타나는 실명 증상이 이 형제에게는 아홉 살 때 찾아왔다. 친구들은 시력이 나빠 늘 주변을 더듬거리고 다니던 그의 모습을 놀려 댔다.
김 회장은 열여섯 살이던 1982년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시험날 시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선생님이 수차례 시험지를 바꿔줬지만 문제는 시험지가 아니라 내 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두 형제가 모두 시력을 완전히 잃자 주변 사람들은 ‘저주받은 집안’이라고 수군거렸다.
크레인 기사 아버지와 야채행상 어머니에게도 두 아들의 실명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관두고 집 안에서만 머물며 좌절하자 주변에서 ‘동굴 속 박쥐’라고 놀렸다.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수면제를 사와 온 가족에게 나눠주고 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은 깊은 잠에 빠졌지만 다행히 모두 깨어났다. 김 회장은 “아버지는 모든 것이 운명임을 받아들이셨다”며 “그러고는 일반 고등학교를 중퇴한 나를 한빛맹학교에 입학시켰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장애인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뒤 점자를 읽는 손가락 지문이 닳고, 책을 음성으로 듣기 위해 이어폰을 낀 귀에 물집이 잡히도록 공부에 매달렸다. 주변에선 “안마사 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유별나게 공부하느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1985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 내용은 당시 동아일보에 비중 있게 보도됐다. 김 회장은 당시 신문 기사를 보여주며 “그때 도전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성적이 우수해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고 모교인 한빛맹학교 교사로 임용됐다. 1996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대 교육학과 대학원에 입학했고 2003년에는 한빛맹학교 최연소 교장에 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학교 경영에 나섰다. 그가 이사장을 맡은 한빛맹학교는 이제 전국 12개의 맹학교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곳이 됐다.
김 회장은 중증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의 ‘롤 모델’이다. 한빛맹학교 시각장애인 교사 안승준 씨는 “요즘 트위터(@kys2024)까지 시작할 정도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시각장애인으로서 꼭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장애인인 내가 앞장서서 많은 장애인 가족에게 큰 용기를 주고 싶다”며 “앞으로 ‘교육부 장관’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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