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30>종단개혁 전야(前夜)- 봉은사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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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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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1980년 10·27 법난 이후 조계종은 권력과의 유착과 종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다. 신임 주지 부임을 둘러싸고 폭력 사태가 벌어진 봉은사. 동아일보DB
1980년 10·27 법난 이후 조계종은 권력과의 유착과 종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다. 신임 주지 부임을 둘러싸고 폭력 사태가 벌어진 봉은사. 동아일보DB
1980년 4월 출범한 제17대 총무원은 불교 자주화와 종단 개혁을 추진했지만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공작에 무너졌다. 그해 10·27 법난(法難) 이후 조계종은 한마디로 혼돈의 상태가 계속됐다. 나는 23일간의 조사 끝에 2년간 공직을 맡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안사에서 풀려난 뒤 1982년 11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5년 11월까지 3년 간 미주와 유럽, 인도, 동남아 불교 국가를 순례하며 포교를 도왔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법난 이후 종단 수뇌부와 정권의 유착은 더욱 심각해졌다. 종권(宗權)을 잡으려는 세력은 전두환-노태우-YS(김영삼 전 대통령)로 이어진 권력의 핵심부에 줄을 대기 바빴다.

또 하나, 종단 내부의 갈등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치열해졌다. 정화운동 시기에는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이 분쟁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1970년 태고종 창종으로 대처 측이 통합종단에서 떨어져 나간 뒤에는 집안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종정과 총무원장 역할에 대한 구분이 모호한 것도 원인을 제공했다. 스승과 출가 문중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불교계 풍토도 이 싸움을 부채질했다.

나의 사형인 탄성 스님이 법난 뒤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 1986년 의현 총무원장이 들어설 때까지 역대 총무원장들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임기는 4년이었지만 진경(1년 5개월), 녹원 스님(2년)을 빼면 3∼7개월의 단명에 그쳤다. 의현 원장은 총무원장이 되기 이전부터 중앙 종회의장 등으로 종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3년 8월 이른바 ‘신흥사 사건’이 터졌다. 설악산 신흥사에서 신임 주지 부임을 둘러싼 갈등 끝에 유혈 난투극이 벌어져 1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당시 사찰에 있던 스님 31명을 모두 연행해 이 중 19명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총무원장 진경 스님을 비롯한 간부들이 퇴진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진경 스님과 종회의장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던 의현 스님의 갈등이 깔려 있었다. 종정 성철 스님은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렸다.

“자비로 생명을 삼는 불문에서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한 것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이 들끓고 있으며, 곤충미물들도 조계종단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 돌발사고가 아니요, 오랫동안 계속된 종단 분쟁의 결말이며, 조계종단이 극도로 타락한 증좌입니다.” 그러나 신흥사 사건은 추락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해 9월 소장파 승려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비상종단’이 발족된다. 이들은 비상종단운영회의를 설치해 개혁을 추진하지만 반발을 초래하자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 총무원 간판을 걸었다. 비상종단은 다시 반대 세력이 승려대회를 열어 비상종단 해체를 결의하자 폭력배들을 동원해 조계사 총무원을 점령했다. 이 사태는 총무원장 녹원 스님과 비상종단 초우 스님의 화합 성명으로 일단락됐다.

공교롭고도 안타깝다. 우리 불교를 대표하는 도심 도량인 봉은사는 다시 종단 분쟁의 현장으로 등장한다.

1987년 10월 31일 ‘봉은사 사태’가 터졌다. 당시 주지였던 밀운 스님이 ‘노태우 총재 대통령 당선 기원 법회’를 계획하면서 시작됐다. 밀운 스님은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서 의현 원장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밀운 스님에게 총무원장 자리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노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설이 퍼졌다. 법회 당일 밀운 스님 측 지지자와 이 법회를 저지하려는 세력들이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의현 원장은 다음 해 주지 임면권을 종정에서 총무원장으로 옮기는 종헌 개정에 성공한 뒤 4월 밀운 스님을 해임했다. 결국 신임 주지가 부임하는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졌고, 12월 밀운 스님 측은 봉은사에 총무원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나는 중진 스님들과 이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애썼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쉽지 않았다. 사사건건 대립하던 밀운 스님과 의현 원장은 1989년 5월 분규로 발생한 채무를 탕감한다는 조건으로 사태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종단 분규 때마다 현장이 된 봉은사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신도들에게도 미안할 따름이다. 모두 부처님을 제대로 못 모시고 있는 불제자들의 죄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1>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권력과의 유착으로 흔들리는 의현 총무원장 체제와 개혁세력의 충돌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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