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문단 원로 김규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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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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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통일문제에 깊은 관심

한국 시단의 원로인 김규동 시인(사진)이 28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고보 2학년 때 영어교사이자 시인인 김기림을 만나 시인의 꿈을 키웠다. 병원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옌볜의대에 진학했지만 문학을 향한 열망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48년 대학을 중퇴하고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고인은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51년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김수영 박인환 천상병 시인 등과 함께 어울렸다. 1970년대부터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해 현실비판적인 시를 주로 썼고 분단과 통일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시집 ‘나비와 광장’ ‘죽음 속의 영웅’ ‘오늘밤 기러기떼는’ ‘길은 멀어도’ ‘느릅나무에게’ 등을 비롯해 평론집 ‘새로운 시론’, 산문집 ‘지폐와 피아노’ 등을 냈다. 올 2월에는 자신의 문학을 집약한 ‘김규동 시선집’, 3월에는 문학적 삶을 정리한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출간했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소원이 있다면 세상 떠나기 전 꿈속에서처럼 고향 땅 종성에 한 번 다녀오고 싶습니다”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 인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 이시영 씨는 “시 쓰기와 민주화 운동에 오래 복무하며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 늘 존경받는 선배 시인”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과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올 6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춘영 여사와 김윤(사무생산성센터 대표), 김현(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김준 씨(ISO 국제심사원)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다음 달 1일 오전 8시.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02-3410-6916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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