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6시간 링거 고통에도 ‘천사의 미소’

  • 동아일보

전 세계 단 10명… 희귀병 ‘터프팅장염’ 앓는 송예린-민성 남매

전 세계에 10명밖에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어린 남매 송예린 양(왼쪽)과 민성 군이 서울 성북구 삼선동 집 안에서 곰인형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전 세계에 10명밖에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어린 남매 송예린 양(왼쪽)과 민성 군이 서울 성북구 삼선동 집 안에서 곰인형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거실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에 켜진 불빛은 이날 내린 하얀 눈처럼 밝게 빛났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 반지하방의 비좁은 거실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날 송예린 양(9)과 어머니 김연옥 씨(36)는 초등학교 현장실습으로 눈썰매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유치원에 다녀온 민성 군(6)은 누나에게서 눈썰매장 얘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하루 종일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김 씨는 이날도 어김없이 병원에 들러 아이들에게 놓아줄 수액과 약봉지를 한 아름 들고 왔다.

남매는 안타깝게도 같은 난치병을 앓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에 환자가 10명밖에 없는 희귀병 ‘터프팅장염’의 국내 첫 환자가 바로 예린 양이다. 장이 기형적으로 형성돼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병이라 2001년 출생 이후부터 지금껏 가슴에 매달린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받아왔다. 매일 각종 영양제 주사를 맞고 류머티스 후유증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스테로이드 약도 먹어야 한다. 워낙 희귀한 병이라 태어난 지 6개월이나 지나서야 병명을 알게 됐고 예린이는 다섯 살이 넘어서야 겨우 걷기 시작했다. 아직도 김 씨는 예린이 몸에 빨갛게 남은 주사자국만 보면 눈물부터 난다.

절망은 또다시 찾아왔다. 김 씨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혹시 몰라 병원에 물어보니 유전병은 아니라고 해 민성이를 낳았다. 김 씨는 국내에 같은 병을 앓는 환자가 남매를 포함해 3명뿐이라는 얘기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남매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제외하고는 잘 때도, 씻을 때도 각종 약이 달린 링거를 줄줄 매달고 생활해야 한다. 약을 떼는 시간이 길어지면 혈당이 떨어져 위험하기 때문이다. 의료급여 1종 혜택과 정부보조금 92만 원을 받지만 그나마 보험적용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남매 한 명당 1년에 1500만 원씩 총 3000만 원의 치료비가 필요하다. 김 씨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너무나 큰돈이다. “돈 벌러 간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 몇 달째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래도 김 씨는 주저앉지 않았다. “요새는 제가 아프거나 잠들면 조용히 들어와서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요. 얼마나 의젓한지…. 이 아이들이 제 삶의 이유예요.” 김 씨는 요새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빨리 병을 고치고 싶어 의사가 되고 싶다던 예린이는 요새 가수가 되고 싶다며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보고 춤과 노래를 따라한다. 한때는 먹고 싶은 것을 잔뜩 만들고 싶어 요리사를 꿈꾸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민성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다행히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알음알음 도와주는 분들이 있는 데다 18일에는 구세군 본영에서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 마련된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서 남매를 위한 모금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빨리 키가 커서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요.” 엄마를 먼저 생각하는 남매의 마음은 이들의 웃음처럼 밝고 예뻤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