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포항대동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이증균 씨(오른쪽)가 정성윤 씨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자녀가 없는 이 씨는 아버지를 사고로 여읜 정 씨 형제를 1987년부터 자식처럼 돌봤다. 사진 제공 이증균 씨
“네가 짱구냐?” “네.” 이증균 씨(61)는 1987년 9월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공을 차던 재윤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씨는 “씩씩하게 대답하던 그때 그 모습에 성윤이와 재윤이 형제를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어린이재단을 통해 20년 넘게 후원한 정성윤(32) 재윤(30) 형제는 이제 서른 살을 넘은 성인이 됐다. 이 씨는 어린이날 전날인 4일 “두 녀석 모두 우리 부부가 마음으로 낳은 형제”라며 활짝 웃었다.
이 씨와 부인 이금님 씨(61)가 어려운 가정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다. 당시 이 씨 부부는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좌절했지만 그때부터 자기 배가 아파 낳은 아이가 아닌 우리 사회 그늘진 곳의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정 씨 형제는 1984년 태풍 ‘리오’로 예인선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포항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이 씨는 가슴으로 키웠다. 재윤이가 초등학교에서 친구와 다퉈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야 했을 때 담임교사의 훈계를 들었던 건 바로 이 씨였다. 한창 크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칭얼댈 때마다 자장면과 찐빵을 사 먹였다. 중학교로 올라갈 때는 교복을 사 입히며 부쩍 자란 키에 대견해하기도 했다.
이제 정 씨 형제는 이 씨 부부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다. 이 씨와 막내 재윤 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며 봉사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주말마다 만나 결식 어린이들에게 점심 봉사를 하는가 하면 복지단체에서 김장을 담그고 도시락 배달도 나선다. 이 씨는 “모르는 사람들이 ‘아들과 함께 봉사활동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봉사활동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대답하곤 한다”며 흐뭇해했다.
봉사로 두 아들을 낳은 이 씨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비를 맞고 갈 때 함께 맞아주는 게 나눔”이라며 “마음으로 키운 두 녀석도 꼭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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