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꿈 접은 소년, 펜에서 길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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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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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이현호 군, 허정무 감독-이동국 선수 만나 기자 체험

난치병으로 축구선수 대신 기자 되기를 목표로 삼은 이현호 군(오른쪽)이 지난달 31일 월드컵축구대표 훈련장인 전남 목포국제축구센터에서 허정무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목포=박재명 기자
난치병으로 축구선수 대신 기자 되기를 목표로 삼은 이현호 군(오른쪽)이 지난달 31일 월드컵축구대표 훈련장인 전남 목포국제축구센터에서 허정무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목포=박재명 기자
“저기, 하얀 양말 신은 사람, 저 사람이 이동국 선수예요.” 지난달 31일 전남 목포시 목포국제축구센터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 이현호 군(18)의 눈이 갑자기 반짝거렸다. 녹색 그라운드에는 여러 명의 선수가 흰 양말을 신고 있었지만 현호의 눈에는 이동국 선수만 보였다. 누가 뭐래도 현호에게 이 선수는 한국 최고의 공격수다.

말없이 경기장만 내려다보고 있는 현호는 키 2m에 몸무게 88kg인 무척 ‘듬직한’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원래 꿈이 ’축구선수‘였던 그는 지금 달리거나 위로 뛰어오를 수 없는 상태다. 현호는 선천성 발육이상 질환인 ‘마르팡 증후군(Marfan Syndrome)’ 환자다. 마르팡 증후군 환자는 근육이 늘어나 일반인보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다. 또 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이 터지기 쉬워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는 건 금물이다. 왕년의 농구 스타인 한기범 선수가 현호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

현호는 지난해 가을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축구 기자였다. 진로를 결정해야 했을 때 그는 ‘축구 전문기자’를 떠올렸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동아일보와 난치병어린이 봉사단체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대한축구협회에 요청해 축구 기자가 꿈인 현호가 31일 축구국가대표 훈련장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 현호는 TV에서만 봤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다가서지 못했지만 이내 기자로서의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이동국 선수에게는 “축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가”라고 물었다. 이 선수가 “경기를 끝내고 너무 피곤해 쓰러질 때, 그 순간 정말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하다”고 답하자 그 대답을 꼼꼼히 수첩에 적었다.

스스로 기자가 되고 싶어서인지 ‘기자들에게 바라는 점’도 물어봤다. 이 선수가 “단순히 결과만 놓고 혹평하는 것보다 선수 개개인에게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수가 “키가 아주 크니 이제 눈에 확 띄는 기자가 되겠다”고 말할 때는 함께 빙그레 웃었다.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도 현호의 어깨를 치며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지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목포=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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