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서 온 ‘사랑의 떡’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23일 경기 고양시의 S초등학교에서 열린 결식아동을 위한 ‘2009 굿네이버스 희망 나눔 학교’의 종강식. 한 교사가 고 김영회 씨의 유언에 따라 아이들에게 설날 흰떡을 나눠주고 있다. 고양=홍진환 기자
23일 경기 고양시의 S초등학교에서 열린 결식아동을 위한 ‘2009 굿네이버스 희망 나눔 학교’의 종강식. 한 교사가 고 김영회 씨의 유언에 따라 아이들에게 설날 흰떡을 나눠주고 있다. 고양=홍진환 기자
이복순씨 “암으로 떠난 남편 뜻” 결식아동들에게 설 선물

“가난해 끼니 굶고 자란 남편

생전 기부-후원 앞장서 실천

각막까지 남김없이 주고 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3일 경기 고양시의 S초등학교. 방학 중인 결식아동을 위해 마련한 ‘2009 굿네이버스 희망 나눔 학교’의 종강식이 열렸다.

교실엔 아이들이 설을 맞아 떡국을 먹을 수 있도록 가래떡이 준비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꿀떡과 백설기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들 앞에 선 선생님은 “여러분이 설날에 떡국과 간식으로 맛있게 먹으라고 김영회 선생님이라는 분이 선물로 주셨다”며 아이들 손에 일일이 떡을 쥐여 줬다. 영진(가명·10)이는 “주신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떡은 맛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에게 떡을 선물한 사람은 지난해 11월 위암 투병 끝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영회 씨. 고인은 세상을 떠나면서 “조화 대신 쌀을 받아 어려운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동갑내기 부인 이복순 씨가 이를 지켰다.

이 씨는 남편의 뜻을 따라 장례식장에 ‘조화 대신 쌀로 달라’는 안내문을 써 붙인 뒤 부부의 논에서 수확한 쌀 여덟 포대를 장례식장에 본보기로 쌓아놓았다. 장례식장에 조화는 몇 개 더 세워졌지만 쌀은 더 쌓이지 않았다. 이 씨는 쌀을 모두 아이들을 위해 기증했다. 이 씨는 “조화 대신 쌀로 내는 것이 아직은 낯설 것”이라며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여덟 포대밖에 안 돼 아쉽다”고 말했다.

김 씨의 기부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생전에 각막과 장기 기증 약속을 한 김 씨는 죽는 순간까지 이를 잊지 않았다. 부인 이 씨는 “장례식 때는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염을 할 때 보니 눈을 동여맨 모습이었다”며 “장기는 암이 번져 기증하지 못했지만 각막 기증 약속을 지킨 것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회고했다.

농사꾼 집안의 6남매 중 장남이었던 김 씨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끼니를 굶는 일이 많았고, 중학교도 마치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할 처지에 있었던 큰아들의 친구를 데려다가 몇 년 동안 같이 지내기도 했고,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를 통해 5명의 아이와 일대일 결연을 맺어 지속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또 어려운 이웃의 빚을 대신 갚아주다가 사기꾼에게 돈을 뺏기는 일이 생길 정도로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 씨는 교회의 봉사활동에 억대의 돈을 쾌척하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 김 씨의 목표는 40명의 아이를 후원하는 것이었다. 건강원에 물품을 납품했던 김 씨는 거래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후원 어린이를 1명씩 늘려 40명을 채우자고 아내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굿네이버스 임경숙 팀장은 “떡을 먹은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김 선생님의 훌륭한 뜻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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