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입실수도’ 권철신 교수의 ‘특별한 휴가’ 제주 세미나

  • 입력 2008년 9월 1일 03시 58분


‘입실수도’로 유명한 권철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가 지난달 29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호텔 세미나실에서 제자가 발표한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 직접 화이트보드에 적어가며 지적하고 있다. 서귀포=이세형 기자
‘입실수도’로 유명한 권철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가 지난달 29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호텔 세미나실에서 제자가 발표한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 직접 화이트보드에 적어가며 지적하고 있다. 서귀포=이세형 기자
“논문 제출 마감일을 지키지 못한 연구실 멤버들은 이번에 오지 못했죠? 다음에는 한 명이라도 마감일을 못 맞추면 이런 행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8월 29일 오후 5시경 제주 서귀포시의 한 호텔 세미나실. 제자들이 논문 발표를 다 마치자 그는 간단한 덕담을 한 뒤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올해 1학기 지도 학생들이 4편의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투고한 성과를 축하하는 ‘해외 학술지 투고논문 봉정식’이었지만 그의 ‘잔소리’는 변함없이 계속됐다.

‘입실수도(入室修道)’로 유명한 권철신(64·사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 미국 일본 등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더 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1986년부터 석사박사과정 학생들과 22년째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있다. 집에는 일요일 하루만 들어간다.

이 덕분에 권 교수의 연구개발(R&D)전략연구실은 미국 일본 등의 정상급 대학 연구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교수는 국내 대학에선 드물게 지난해부터 매 학기 지도학생들의 연구성과를 축하하기 위한 투고논문 봉정식을 열어왔다.

이번 봉정식의 경우 기업체 임원으로 활동하는 권 교수의 제자들이 “정년도 1년밖에 남지 않으셨고, 후배들이 계속 많은 논문을 쓰도록 자극도 줄 겸 머리 좀 식히고 오시라”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제주 여행 일정을 잡아버린 것이다.

박사과정 김기찬(29) 씨는 “오랜만에 연구실 전체가 논문 봉정식과 함께 여행 기회를 맞아 모두 좋아하고 있다”고 어린이처럼 즐겁게 말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매일 세미나를 열었고 국내 유일한 전공분야인 R&D공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요즘 R&D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말은 많이 나와요. 그런데 R&D 활동의 전략을 설계하는 R&D공학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일본은 도쿄공대와 쓰쿠바대 등 명문대 학부에도 R&D공학과가 설치돼 있는데 국내에는 어디에도 R&D공학과가 없어요.”

이공계 위기에 대해서도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권 교수는 “우수한 학생이 이공계를 오지 않고 그나마 온 학생들이 학부만 마치고 해외로 나가는 건 한국에 있으면 성과도 나지 않고 보상도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교수들이 앞장서서 제자들을 데리고 성과를 내는 수밖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학의 연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교수들이 너무 가정적으로 변했어요. 연구실보다 가정을 더 중시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아직 우리는 교수가 온몸을 던져 제자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 몸값은 자연스레 올라가고 이를 본 학생들도 계속 이공계 공부를 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22년째 입실수도를 해왔지만 그는 은퇴 뒤에도 일할 마음이 남아 있다.

“많이 지쳤고, 가족에게도 미안해서 은퇴 뒤에는 사실 쉴 생각입니다. 그러나 R&D공학을 전공으로 개설하려는 대학이 있으면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서귀포=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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