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지난해 12월 21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떴으나 그가 생전에 한국의 지인들에게 자신의 와병을 알리지 못하도록 해 부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과 동아일보의 인연은 각별하다. 15세 소년이던 1930년대 말, 동아일보사 문선부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향학의 뜻을 세운 그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도쿄에서 갖은 고생 끝에 주오(中央)대에 입학했지만 유학생 독립운동에 관여해 강제 출국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 한국거류민단 도쿄지부 의장을 지내는 등 크게 성공했다. 만년에는 사업을 미국으로 옮겨 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활동해 왔다.
고인은 민주통일당 당수를 지낸 고 양일동 선생의 친동생으로 1960년대에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본에서 3선 개헌 반대 운동 등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활발히 벌이기도 했다.
동아꿈나무재단은 “민주투사 자녀 등 불우학생과 장애학생을 지원하고 독도문제 연구기금으로 써 달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살려 그의 기부금을 종자돈으로 ‘서곡(瑞谷) 양삼영 기금’을 설립해 독도 연구 지원 및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납골봉안식에는 동아꿈나무재단 최준철 이사가 참석했다.
고인의 유골 일부는 고국으로 옮겨져 안장될 예정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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