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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26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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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6일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한명숙 총리가 낭독한 조사의 전문.
『오늘 우리는 현석 최규하(玄石 崔圭夏) 전 대통령님을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대통령직을 맡으셔서 혼란한 정국을 국민과 더불어 감당하셨던 고인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슬프기만 합니다.
생전에 보여주신 국정 책임자로서의 태도와 평생 일관해 오신 자세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이제 영면의 길에 드신 고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드리며 이 자리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토대를 굳건히 다져주신 그 큰 공을 기리고자 합니다.
고인께서는 외교부 장관을 5년간이나 역임하시면서 초기 미약했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역량을 크게 키우셨습니다.
외무부 통상국장과 4차 한일회담 대표, 남북조절위원회 위원, 그리고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하시면서 외교보국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신명을 다 바쳐 오셨습니다.
73년 그 긴박했던 오일쇼크 때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한국에 대한 석유공급 약속을 받아낸 사실은 잊혀지지 않는 업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도 이렇듯 한국 외교에 큰 족적을 남기신 고인의 헌신과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고 우리 모두는 믿고 있습니다.
외교업무를 맡으시던 그 시절 늘 '몸을 던져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헌신부난의 자세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한 태도야말로 이후 평생에 걸쳐 견지하신 엄정하고 성실한 삶의 지표이셨습니다.
고 최규하 전 대통령님,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아끼시는 마음이 어느 하루인들 덜하셨겠습니까.
오래전 방문했던 강원도 탄광촌 석탄 노동자의 고생하는 모습에 '평생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고 한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셨고 어김없이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국무총리 재임시절에는 어느 하루 쉬지 않으시고 안전한 국민생활을 위해 국토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격려하셨습니다.
50년 가까이 쓴 낡은 선풍기나, 검박한 살림살이를 한 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고인은 우리 시대 진정한 선비의 표상이셨습니다.
진실로 서민과 더불어 국민과 더불어 동고동락하시며 청렴하고 검소하신 생활로 늘 모두의 귀감이셨습니다.
이제 영면의 길에 드신 고인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드립니다.
현석 최규하 전 대통령님, 이 나라와 국민의 내일을 노심초사하시던 그 마음을 남아있는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 무거운 짐은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십시오. 이제 남은 우리가 생전에 늘 희구하셨던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위를 책임지고 지켜나가겠습니다.
영혼은 비록 하늘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 겨레와 이 나라 곁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시리라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 합니다만, 우리는 결코 고인을 외로이 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생전에 보여주신 구국헌신의 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로 타오를 것입니다.
온 국민과 더불어 삼가 고 최규하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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