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46·사진) 씨는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한국능률협회 주최로 열린 ‘신춘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기업 경영자들 앞에 연사로 섰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5좌 완등(完登)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엄 씨는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잘라내고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아픔을 얘기하면서도 ‘경영’이란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CEO들은 그에게서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투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엄 씨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부모님 때문에 어린 시절 내내 산속에서 살았다”며 “‘왜 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한 1985년을 떠올렸다.
“당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있는 대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들 손가락질했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지만 ‘인간의 미약함’을 느끼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대원 한 명이 죽었다. ‘두 번 다시 히말라야엔 안 간다’고 결심한 후 내려왔다.
한국에 돌아와선 산을 잊어 보려고도 했다고 털어 놨다. 결국 3년 뒤인 1988년 엄 씨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아…도전하니까 되는구나!’
그 이후 2000년까지 그는 히말라야에 28번 도전했다. 그중 딱 절반인 14번을 실패했다. 하지만 어떤 좌절도 그의 도전 정신을 막진 못했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등반으로 기억된다.
“다리에 중상을 입고 등반 도중에 한 발로 내려왔습니다. 의사가 ‘앞으로 산은 못 오른다. 걸어 다니는 걸로 만족하라’고 했죠. 그 많은 동료의 시신을 끌어안으면서 살아왔는데…. 눈물밖에 안 나왔습니다.”
퇴원한 뒤 도봉산을 보는 순간 다시 가슴이 쿵쿵거렸다. 깁스를 풀고 북한산 정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 마침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안나푸르나가 ‘문’을 열어준 것이다.
최고 산악인이자 만학도인 엄 씨는 24일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한다. 중국어를 전공한 것은 히말라야 등정을 하면서 의사소통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 엄 씨는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기쁘다”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다음 달에 에베레스트 동쪽 끝자락에 있는 로체(8400m) 등정에 도전한다. 16번째 히말라야 등정 목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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