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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5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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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한국시간) 폐막된 제5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45). 수상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이 ‘사건’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듯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언제 수상 소식을 알게 됐나.
“13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프랑스 개봉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 도중 얘기를 들었다. 오후 6시쯤 되어서 영화제 관계자가 베를린행 항공기 티켓을 전해주면서 ‘감독상일 것 같다’고 했다.”
―영화제 기간에 열린 시사회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번까지 베니스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네 차례 진출했다. 그동안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내 영화를 익숙하지 않은 ‘날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 ‘사마리아’는 예산이 4억7000만원밖에 안 들었고 촬영도 11회에 마쳤다. 심사위원들은 영화의 미숙함보다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한 것 같다.”
―‘봄 여름…’ 이후 김 감독의 영화가 이전의 강렬한 원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순화됐다는 평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봄 여름…’ 이후 메시지가 좀 부드러워졌다는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마리아’는 조용한 결말을 내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난 원시성도 있고 고요함도 있다. 작품을 할 때마다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김 감독은 1996년 ‘악어’로 데뷔한 뒤 ‘사마리아’까지 10편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이자 ‘문제 감독’으로 존재해 왔다. ‘섬’ ‘수취인불명’ ‘나쁜 남자’로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국제영화계의 높은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그는 이와 달리 한국 영화계에선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변두리 인생의 어두운 내면세계와 폭력, 여성의 성(性) 등 파격적인 소재와 격렬한 표현 방식은 ‘김기덕 마니아’를 낳은 반면 반(反)여성주의적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억원 안팎의 저예산으로 불과 며칠 만에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방식도 기존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김기덕 영화에는 그 자신의 독특한 성장사도 밑그림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는 한번도 정식 영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초등학교 졸업 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피해 공장생활과 해병대 군복무를 했고 3년간 프랑스를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김 감독은 독특한 인물이다. 이번 수상도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난 상 받으려고 영화를 한 게 아니다. 이번 수상 여부를 떠나 내 생각대로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요즘 한국 영화에는 관객이 굉장히 많이 든다. 하지만 저예산 영화 또는 유명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은 영화, 배급력이 없는 영화는 빛을 못 보고 있다. 2개 영화가 600개관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멀티플렉스에서 같은 영화를 2개관 이상 상영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3, 4개관에서 하는 등 편중 현상이 심하다. 불행한 파워 게임이다. 한국 영화를 지키자고 스크린쿼터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은 문제다.”
―다음 작품은….
“한국 입양아를 소재로 다룬 ‘유리’라는 작품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자본으로 찍을 생각이다.”
꾹 눌러쓴 모자와 짧은 머리, 거침없는 말투는 1996년 ‘악어’로 데뷔했을 때나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자가 된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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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는 ▼
여고생의 원조교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원조교제를 하던 친구가 죽은 뒤 몸을 팔게 된 여고생 여진(곽지민)과 형사인 아버지(이얼)가 나누는 화해와 용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진은 친구 재영(서정민)이 죽고 난 뒤 그가 만났던 남자들에게 차례로 접근해 잠자리를 함께한 뒤 돈을 돌려주면서 이들을 정화시켜 나간다. 사건 현장에 나갔다 우연히 옆 모텔에서 딸의 매춘을 목격한 아버지는 충격에 휩싸이고 딸이 만나는 남자들을 상대로 복수하기 시작한다.
베를린영화제 기간에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던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원조교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종교적 색채가 강했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연장선상에서 용서와 화해를 그렸다”고 말했다. 원조교제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데다 촬영 당시 주인공인 곽지민양이 고교에 재학 중이었고 수녀복을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사용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개봉은 3월 12일 예정.
김기덕 감독 연보
△1960년 경북 봉화 출생 △90∼93년 프랑스 유학 서양화 작업 △96년 ‘악어’로 영화계 데뷔 △99년 ‘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됨,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대상 △2001년 ‘수취인불명’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됨, ‘나쁜 남자’가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됨 △2002년 ‘해안선’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됨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됨 △2003년 ‘사마리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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