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영 前조선일보회장 별세…6·25때 조선일보 다시 세워

  • 입력 2003년 8월 8일 18시 34분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일 별세한 우초 방일영(愚礎 方一榮.사진) 조선일보 전 회장은 55년 동안 조선일보사를 이끌어 온 한국의 대표적 언론경영인 중 한 사람이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조선일보를 인수해 중흥의 계기를 마련했던 계초 방응모(啓礎 方應謨· 1883∼?) 전 조선일보 사장의 양자로 입적된 방재윤(方在胤)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인은 일제에 의해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된 2년 뒤인 1943년 할아버지 방응모 전 사장의 비서로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이후 방응모 전 사장이 1950년 7월 납북되자 같은 해 10월 17일 이사에 선임됐다. 당시 조선일보는 전쟁으로 사옥이 불에 타 신문인쇄시설이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이때 고인은 뿔뿔이 흩어진 기자들을 다시 모아 조선일보 속간에 힘썼다.

고인은 54년 사장에 취임한 뒤 99년 고문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사 83년사의 절반 이상을 이끌어 왔다. 조선일보는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과 인력관리에 힘입어 재정적 독립의 초석을 다졌다. 고인은 또 인재에 대한 남다른 욕심으로 홍종인(洪鍾仁) 천관우(千寬宇) 부완혁(夫玩爀) 최석채(崔錫采) 성인기(成仁基) 송지영(宋志英) 고정훈(高貞勳) 선우휘(鮮于煇)씨 등 당대의 논객들을 조선일보로 불러 모아 필명을 떨치게 했다.

고인은 1963년 3월에는 12일간 사설을 게재하지 않는 것으로 군정 연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그는 ‘방일영장학회’와 ‘방일영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방일영국악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63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 7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장을 지냈고 국민문화훈장 무궁화장(82년)과 금관문화훈장(99년)을 받았다.

이날 빈소에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정대철(鄭大哲) 민주당 대표,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 박성용(朴晟容) 금호그룹 명예회장, 황병기(黃秉冀)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은 장남인 방상훈(方相勳) 조선일보 사장과 차남 방용훈(方勇勳)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5남 1녀.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 02-760-2091∼2(서울대병원), 02-724-5110(조선일보사)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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