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숨은 손' 오금석옹, 남몰래 10년간 11억 장학금

  • 입력 1999년 11월 16일 19시 58분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마저 중퇴해야 했던 90대 노인의 ‘베푸는 삶’. 10년째 전국의 가난한 중고교생들에게 매년 1억25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왔으면서도 그는 이를 숨겨왔다. 그래서 그의 뜻이 더욱 소중하다.

▼돈없어 초등학교 중퇴▼

서울 종로구 관수동 효동장학재단 설립자인 오금석(吳今石·91·서울 서초구 서초동)씨.

그는 90년 6월 장학재단을 설립한 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시가 30억원 상당의 빌딩을 기금으로 출연해 이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16일 재단측에 따르면 그동안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은 강원 태백시의 태백기계공고, 서울의 동도공고와 서서울정보산업고 등 전국 75개교 2000여명. 장학금 액수만도 11억여원에 달한다.

오씨의 장학사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 ‘태백기계공고에 아무 관계도 없는 서울의 한 장학재단에서 매년 장학금을 보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지역사회에 나돌면서부터다.

효동장학재단은 93년 이 학교에 800만원의 장학금을 처음 보내온 데 이어 매년 1200여만원의 장학금을 보내와 모두 174명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 학교 김헌주(金憲柱·56)교장은 “학교나 지역사회와 아무 상관도 없는 재단에서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연락해온 뒤 지금까지 모두 9328만원의 장학금을 보내주었다”고 말했다.

김교장은 “때로는 재단에서 직접 사람이 찾아오거나 학교 은행계좌를 통해 장학금을 전달받았다”며 “험한 세상에 남을 돕는 것이 참으로 값진 일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75개교 2000여명 혜택▼

오씨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와 함께 서울 연희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마저 그만둬야 했다. 당시 오씨는 오직 살아남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였다.

오씨는 양계 등으로 어느 정도 목돈을 만든 뒤 70, 80년대 부동산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지만 늘 배우지 못한 게 한이었다.

오씨는 “분에 넘치는 재산은 사회에 환원해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했고 90년 6월25일 이같은 평소의 신념을 실천에 옮겨 효동장학재단을 설립했다.

▼9년째 병석 거동못해▼

그러나 그는 장학재단을 설립한 이듬해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지금껏 기동조차 못하고 있다.

재단측은 오씨의 뜻에 따라 장학사업을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매년 이사회를 통해 주로 실업계 학교를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는 전국의 62개교 171명을 선정해 분기마다 등록금을 대주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그동안 ‘선행은 남 몰래 해야 한다’는 출연자의 뜻에 따라 가능한 한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태백〓경인수기자〉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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