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평화의집 원장부부,장애인의 엄마-아빠 15년

  • 입력 1998년 12월 22일 19시 40분


세밑 찬바람속에도 그 ‘장애’부부는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장애인과 무의탁노인 26명의 보금자리 ‘평화의 집’은 그래서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그렇게 장애인의 편에 서서 살아온 15년, 벌써 7백여명이 자활의 힘을 얻어 떠나갔다.‘장애인들의 안식처’로 불리는 경기 안산시 사2동 ‘평화의 집’. 원장 임득선(林得善·50)씨는 소아마비를 앓은 1급 지체장애인이다. 아내 김경순(金敬順·35)씨도 어린날의 영양실조로 다리를 전다.

임원장이 장애인돕기에 나선 것은 83년. 당시 기독교에 귀의해 선교활동을 벌이던 그는 거적 움막에서 하반신을 못 쓰는 30대 여자가 ‘짐승’처럼 사는 모습을 목격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삶을 포기한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길이 없을까.’

그는 충남 천안시의 자개농 공장에서 일해 모은 40여만원을 들여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의 한 주차장 옆 공터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지체장애인 7명을 돌보기 시작했다.

임원장은 이후 15년간 장애인들을 기피하는 주민들의 눈총을 피해 서울 대전 경기 광주군과 성남시 등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87년 가을 ‘고난’을 함께 나눌 반려자 김경순씨를 맞게 되었다. 김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뒤 자원봉사를 나왔다가 임원장을 알게 되어 흔쾌히 평생 같은 길을 걷기로 했다.

15년간 임원장 부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모두 7백여명. 취직하거나 장애인끼리 서로 짝을 맺어 독립해나갈 때 두 사람의 가슴은 보람으로 뿌듯했다.

각계의 후원도 늘기 시작했다.면장갑납품 일도 90년이후 D자동차측의 배려로 시작한 것. 95년 봄에는 그동안 모은 돈 3천5백만원으로 전세를 얻어 지금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평화의 집도 IMF의 날선 칼바람앞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면장갑 주문량이 격감하고 3백50만원을 넘던 한달 수입이 70만원정도로 줄고 다달이 1백50만원씩 들어오던 후원금도 끊어지다시피했다. 자산이 없어 사회복지시설 인가도 받지 못해 정부지원은 엄두도 못낸다.

그러나 이 부부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았죠. 그러나 포기하고 싶을 때 늘 도와주시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뜻처럼….”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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