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 訪北]새정부 對北포용정책 「시금석」

  • 입력 1998년 6월 12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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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의 방북(訪北)은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 후 남북한간의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시금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방북은 성공한 실향 기업인으로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꿔 온 정명예회장의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됐지만 전환기에 접어든 듯한 남북한의 정책변화가 이를 성사시키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역시 지난 수년간 첨예한 긴장과 대립의 장소였던 판문점이 북한의 동의 아래 교류 협력을 위한 장소로 이용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4월 베이징 남북 차관급회담에서도 “판문점을 대화나 교류의 장소로 전환하는 것은 북남관계 여건에 비춰볼 때 시기상조”라고 주장했었다.

북한의 태도변화는 새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분위기가 좋아진데다 최근 유엔사와 북한군간의 장성급회담 재개 결정으로 판문점 통과를 반대해 온 북한 군부의 입장이 많이 완화된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물론 정명예회장의 방북은 이른바 ‘유전방북(有錢訪北)’의 폐해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1천마리에 달하는 소와 5만t의 옥수수를 지원하면서도 오히려 주는 쪽이 저자세인 듯한 느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상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큰 맥락 속에서 보면 그의 방북은 인도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그것이 새 정부의 달라진 대북정책의 첫번째 증거이자 신호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이다.

관계자들은 앞으로 정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다른 기업 총수들의 방북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92년 북한을 방문했던 장치혁(張致赫)고합회장을 비롯해 현재현(玄在賢)동양회장 서성환(徐成煥)태평양 회장 임광정(林光廷)한국화장품 명예회장 등의 방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또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의 재방문과 나진 선봉지역의 통신센터 건립사업을 추진 중인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 남북협력사업자로 지정돼 있는 LG 한일 태창 신원그룹 총수들의 방북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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