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병무청감사]지도층인사 아들 버젓이 軍면제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모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인 A씨는 9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유학길에올랐다. 그러나 A씨는 유학이 아닌 이민 형식을 택했다. 미국에 사는 친척의 초청장을 받아 ‘나홀로 이민’을 떠난 것이다.

A씨가 가족들을 두고 혼자 이민수속을 밟아 유학을 떠난 이유는 병역문제 때문. 일반유학생의 경우 27세를 넘기면 무조건 귀국해 병역의무를 마쳐야 하지만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A씨와 같은 이민자의 경우 국외여행을 무기한 허가하고 있다. 따라서 병역의무기간인 30세만 넘겨 귀국하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돼 병역이 면제된다.

A씨는 그동안 몇차례나 귀국, 몇개월씩 머물며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국내 체류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않으면 당국에서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을 마치고도 당분간 국내와 미국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의 모대학 박사과정의 B씨는 유학을 갔다가 아예 영주권을 취득했다. B씨는 학위만 따면 곧바로 귀국해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취직할 생각이다. 그가 굳이 ‘하늘에서 별따기’라는 미국 영주권을 기를 쓰고 취득한 것은 물론 군대문제 때문.

A씨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에게도 국외여행을 무기한 허용, 30세까지만 버티면 병역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나홀로 이민’이나 해외영주권 취득은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합법적인 병역회피’의 수단이 돼 왔다. 특히 이런 사례 중 대부분이 사회지도급 인사의 자제들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26일 최근 병무청 감사에서 92∼96년 단독이민을 떠나거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2천6백92명 중 6백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1.4%가 30세까지 병역연기 혜택을 받고 있음을 밝혀냈다.

감사원은 또 이들의 친권자 4백86명의 80% 이상이 사회지도급 인사이며 이중 22명은 대학총장 병원장 등 사회저명인사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저명인사’의 명단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 관계자는 “최소한 중소기업체 사장이며 ‘사’자 돌림의 인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중에는 공무원도 끼여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또 서울의 경우 95년 만30세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6백63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10.2%인 68명은 그뒤부터 집중적으로 귀국, 국내에 체류해온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단독이민 등이 병역회피를 위한 것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이같은 편법 병역회피를 막기 위해 이들 단독이민자와 영주권취득자들에 대해 ‘병역기피 및 행방불명자’의 병역의무기간(35세)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것을 병무청에 권고키로 했다.

한편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병무청이 5명의 고졸학력 병역의무자를 중졸학력으로 조회해 현역입영대상자를 보충역으로 처분하는 등 병역처분의 허점도 적발했다.

〈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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