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인찬]‘상호군수지원’ 조급한 日, 미루는 韓

  • 동아일보

황인찬 도쿄 특파원
황인찬 도쿄 특파원
지난달 한 스터디 모임에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현안을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일본 방위성 출신의 군사 전문가도 참석해 일본의 안보 상황을 설명했다. 발표 내용 대부분이 중국의 위협과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내에서 북한과 러시아보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었다.

中위협 군사협력 서두르는 日

일본의 최서단인 요나구니섬은 대만에서 동쪽으로 불과 110km가량 떨어져 있다. 그만큼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일본은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지난해 11월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둘러싸고 중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 중국이 2027년 대만에 대한 무력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내년이다. 미국의 동북아 관여가 줄어든 상황에서 일본은 우군 늘리기에 바빠졌다.

이날 일본 참석자들은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에 한국이 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냐며 궁금해했다. ACSA는 양국 군이 연료와 탄약, 수송, 정비 등 각종 군수 물자를 서로 지원하는 제도다. 평시는 물론이고 유사시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2013년 12월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에 투입된 한빛부대가 탄약이 부족해 급히 일본 육상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 발을 지원받기도 했다. 한일 간 ACSA 같은 제도가 없기에 유엔 중재로 실탄을 빌려왔다. 이런 선례도 있기에 일본은 적극적이다. 한일 정상이 ‘셔틀 외교’를 이어 가며 교류를 확대하는 가운데 군사협력에는 왜 인색하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자 이례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ACSA를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얘기했다”고 밝힌 것. 그는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협정을 추진하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뭔 소리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민 정서상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한일 교류는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예민한 부분이 많다. 특히 과거사 문제는 덮어둔 숙제처럼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ACSA가 체결되면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하는 발판이 마련된다. ‘뭔 소리야’라는 대통령의 발언도 이런 국민의 인식에 닿아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 발언 뒤에도 일본은 적극적이다. 해상자위대 수장인 사이토 아키라(齋藤聡) 해상막료장은 “협정을 체결하면 더욱 원활한 협력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일한의원연맹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회장은 “제도를 적극 이용하는 것이 양쪽을 위한 길”이라며 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협력 강화 위한 환경 먼저 조성해야

국방부에 따르면 한국은 1988년 미국과 처음으로 ACSA를 체결한 뒤 총 17개국과 해당 협정을 맺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유럽과 중동 국가뿐 아니라 필리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몽골 등 아시아 국가들과도 체결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도 체결국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은 빠져 있다. 일본은 서운할 수 있고, 한국은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일본은 독촉하고, 한국은 미루는 듯한 모습이 이어지는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안보 협력은 단순히 군사 당국자들의 서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들 마음 깊은 곳의 우려를 없애는 신뢰 구축 과정이 사전에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협정 체결을 위한 제반 환경 조성에 양국이 보다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군사 교류 활성화, 과거사 문제의 인도적 접근 확대 같은 방안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한일 간 신뢰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체계적으로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위협#일본 안보#한일 군사협력#상호군수지원협정#대만 해협#다카이치 사나에#국민 정서#과거사 문제#군사 교류#신뢰 구축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