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2008년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며칠 전, 나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을 찾고자 콜롬비아 보고타 시내의 서점들을 이 잡듯 뒤졌다. 결국 김훈의 ‘칼의 노래’와 이문열의 ‘시인’, 딱 두 권의 소설을 찾아냈다. 다음 임무는 더 어려웠다. 스페인어로 쓰인 한국에 관한 책을 찾는 일이었다. 언론인 브루노 갈린도의 ‘한국 일기(Diarios de Corea)’와 페루 출신 작가 리카르도 수말라비아의 ‘깨어난 피와 함께(Con la sangre despierta)’에 실린 짧은 르포르타주 한 편 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말라비아를 소개한 글에서 내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구절이 있다. 그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거주했다는 것. 그로부터 수년 뒤 그는 페루 리마에서 열린 내 책의 출간 기념회 사회를 맡아 줬다. 이후 우리는 문학을 주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몇 주 전 나는 그를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수말라비아는 페루 교황청립 가톨릭대 동양학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며 한국 문학을 페루에 알리는 데 힘써 왔지만, 오랜 시간 한국에 오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 근처의 한 고깃집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서울에 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시차 때문이 아니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교수로 지내던 시절 즐겨 찾았던 종로와 이태원 거리를 밤낮없이 걷고 또 걸었기 때문이었다.
고깃집에 앉아 수말라비아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양념 돼지갈비라고 대답했다.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앞에 두고 나는 이전부터 간직해 온 질문을 던졌다. “1997년에 한국에서 사는 건 어땠나요?” 그는 몇 문장으로 당시를 요약했다. 그가 처음 초빙교수로 왔을 때 한 달에 3500달러라는 꽤 많은 월급을 받아 초기 몇 달간은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별다른 설명도 없이 월급이 5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미혼에 자녀도 없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잔혹했다고 했다.
우리는 손꼽아 기다리던 그의 귀환을 축하하고자 고기를 더 주문했다. 그는 부유한 교수에서 가난한 교수로 전락했던 그 기이한 몇 달을 떠올리며 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근처에는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고급스러운 차를 탄 중년 남성이 와서 하루 종일 낚시를 했다. 며칠 뒤에는 비슷한 행색의 다른 남자들 역시 비싼 차를 몰고 와 온종일 낚시만 하고 돌아갔다. 나중에는 두세 명이 아니라 열 명 남짓한 남성들이 모두 정장에 넥타이를 맨 채 낚싯대를 잡고 있더란다. 그는 한국인 동료에게 무슨 이유인지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직장을 잃었지만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말할 수 없어 출근하는 척하며 하루 종일 호숫가에서 낚시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고깃집을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나는 수말라비아가 머무는 서울 중구 을지로의 호텔까지 버스를 타라고 권했다. 녹사평에서 을지로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명동 일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아득한 1990년대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며칠 뒤 스페인 정부가 운영하는 주한 세르반테스 문화원에서 열린 수말라비아의 강연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강연 주제는 한국 고전소설 ‘춘향전’이 20세기 초 과테말라의 작가이자 번역가, 여행가였던 엔리케 고메스 카리요를 통해 스페인과 남미에 어떻게 알려졌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1905년 프랑스 마르세유항을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고메스 카리요는 선장의 서재에 꽂힌 책 한 권에 마음을 빼앗겼다. 책의 제목은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 금지된 사랑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그린 춘향전의 프랑스어 번역본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 그 책을 읽은 뒤 관련 기사를 썼고, 이 글은 남미를 비롯한 스페인어권 국가의 여러 신문에 실렸다.
당시 유럽과 남미에는 한국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21세기 초 수말라비아가 서울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썼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한국에 관해 이야기한다. 헤어지기 전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드디어 한국이 거대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듯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드디어 한국인들이 단 빵이 아니라 짭짤한 빵(pan salado)을 만들더라고요. 제가 있던 시절에는 그런 빵을 구하는 게 불가능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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