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건강 챙겨줄 ‘주치의’를 갖는다면[기고/이상현]

  • 동아일보

이상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장
이상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장
2026년은 건강돌봄의 역사에 두 줄이 기록될 것이다. 한 줄은 3월 시작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고, 또 한 줄은 몇 달 뒤 시작될 국민과 주치의를 잇는 일차의료 시범사업이다. 두 줄은 결국 한 사람의 삶에서 만난다.

고령의 한 환자가 있다. 그는 고혈압 약은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고지혈증 약은 신경과에서, 당뇨 약은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서, 관절 약은 정형외과에서 받는다. 약 종류는 열 가지를 훌쩍 넘는다. 대부분 필요한 약이지만 중복되거나 줄이면 좋을 약도 있다. 검사도 여러 병원에서 받지만 어떤 검사가 중복이고, 어떤 검사가 더 필요한지 환자가 알기는 어렵다.

환자를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봐 드릴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 약을 검토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복 처방·검사를 막으며, 필요할 때 전문의와 연결시켜 빠뜨림 없는 진료를 책임지는 의사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의사를 ‘주치의’라고 부른다. 주치의는 일차의료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 빈자리를 그대로 두면 공백은 더 커져 우리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미국과 유럽이 주치의 중심 지불제도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는 검사와 행위에 기반한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료제도는 국민, 의료계, 정부 세 축으로 움직인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국민은 진료비는 적게 내면서 검사는 많이 받고 싶은 두 마음을 갖게 된다. 의료기관은 환자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의사의 마음과, 값비싼 장비를 운영하려면 검사가 이어져야 하는 경영자의 마음 사이에 놓인다. 정부는 의료비 급증 앞에서 통제를 늘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료계와 마찰이 생긴다.

세 축이 모두 만족하는 틀은 없을까. 이런 고민 끝에 일차의료개발센터에서 ‘환자군 기반 일차의료 지불 모형’을 시뮬레이션해 봤다. 세 축의 이해가 충돌하지 않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접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본인 부담의 변화 없이 국민이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를 곁에 둔다면 자연스럽게 중복 검사와 처방이 줄고, 응급실 이용과 입원도 감소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재택의료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의사는 환자의 위험도에 맞는 수가 위에서 포괄적 관리의 가치를 인정받고, 행위별 수가가 강요해 온 진료량 경쟁에서 벗어난다. 정부는 불필요한 진료비 감소로 고령사회의 재정 압력에 대응할 여지를 얻는다.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전 국민 건강보험 데이터에 기반한 시뮬레이션은 이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새 제도는 의료계에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틀이 아니라, 지역 의원의 상황과 수용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강요가 아니라 의료계가 스스로의 속도로 선택해 들어오는 길이어야 한다. 단독 개원이 대부분인 의료 현장에서는 주치의와 통합돌봄을 잇는 지역 일차의료지원센터의 뒷받침도 함께 필요하다.

행위별 수가는 환자를 많이 보는 진료를 보상해 왔다. 환자군 기반 지불 모형은 한 사람의 환자를 폭넓고 깊게 보는 진료를 보상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고 살피는 주치의의 자리, 그 오래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울 때다. 2026년은 그 빈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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