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무서운 불신[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104〉

  • 동아일보

“거긴 살아서는 못 나와요.”

―이상민 ‘살목지’


“거긴 살아서는 못 나와요.” 어딘가 음산한 분위기의 아주머니가 살목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낚시꾼들의 잇단 사망 사고와 로드뷰 사진에 찍힌 정체불명의 얼굴 형상 때문에 재촬영을 하러 살목지에 간 PD 수인(김혜윤 분)과 촬영팀은 그 아주머니의 말처럼 벌어지는 갖가지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한다. 로드뷰 촬영을 하는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에 이상한 형상이 포착되기도 하고,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갔던 돌이 되돌아오기도 하며, 야간에 움직임을 포착하는 모션 디텍터에 알 수 없는 존재가 보이기도 한다. 깜깜한 밤길에 내비게이션의 오작동은 차량을 저수지로 빠뜨리고, 살목지로부터 빠져나오려 해도 같은 장소를 계속 빙빙 돌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무서워도 너무 무섭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영화 ‘살목지’는 그 실제 배경인 충남 예산의 저수지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차량이 몰리고 텐트를 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살목지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도 세워졌다. 영화에서 살아서는 못 나온다는 곳이 관광지화되어 사람들이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신드롬에 힘입어 ‘살목지’는 공포영화임에도 160만 관객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공간에 대한 괴담을 공포의 소재로 삼았고, 역시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260만 관객을 동원했던 ‘곤지암’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살목지’가 무서운 건 현대적인 영상 장비들에 비친 믿을 수 없는 불길한 징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안전한 길을 안내해줘야 할 내비게이션이 죽을 길로 인도한다거나, 분명한 실체만을 담아야 할 카메라에 이상한 형체가 잡히는 식이다. 이런 징조들이 반복되면 그 공간이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귀신도 무섭지만, 우리를 더 무섭게 하는 건 결국 불신인 셈이다.

#살목지#공포영화#충남 예산#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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