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지난 설 연휴에 친척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로 서로의 속사정을 깊이 알지는 못했다. 오가는 몇 마디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종사촌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50대 후반인 사촌은 몇 년 전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서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보였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태도에서부터 여유가 묻어났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표정은 부드러웠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지켜본 내게는 확연한 차이였다. 무엇이 그를 바꿔 놓았을까. 잠시 마주 앉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일이었다. 사촌은 매주 세 차례 정도 영업 프리랜서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직장 경험을 살려 거래처를 발굴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업무였다. 거절도 많고 직전에 취소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렇지만 설명하는 내내 목소리에서 힘이 전해졌다. “내가 움직여야 돌아가.” 자신이 책임지는 하루가 있다는 사실이 사촌을 붙들어 주는 듯했다.
그러다가 사촌은 친구로 화제를 돌렸다. 대학 동창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밥 한 끼 먹는 거지.” 상갓집에서 생긴 모임이라며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표정은 정반대였다. 지난번 나눴던 대화 내용을 옮기는 모습에서 행복감마저 느껴졌다. 사촌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가 친구와의 만남을 얼마나 기다리는지가 담겨 있었다.
근황을 이어가던 사촌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나눌 거 없어?” 순간 의아했는데, 곧바로 나눔 가게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기부 물품을 정리하고 판매하는 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적적해서 나갔지만, 하다 보니 자기 같은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는 농담 속에도 책임감이 배어 있었다. 사촌에게 봉사는 그저 세월 보내기용은 아닌 게 분명했다.
사촌 이야기를 듣는데 내 퇴직 후 시간들이 겹쳐 지나갔다. 나도 회사를 떠난 뒤 가장 걱정됐던 것이 돈 문제였다. 월급이 끊겼다는 현실은 적잖이 나를 위축시켰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통장 잔액을 수시로 들여다보게 됐다. 어쩌다 소소한 수입이라도 들어오면 숨통이 트였다.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다시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또한 회사를 떠나고 나서는 인간관계도 조심스러워졌다. 괜히 남들에게 연락했다가 불편을 주면 어찌할까 망설이게 됐고, 식사에 초대받아도 머릿속에서 비용부터 계산했다. 그렇게 한 번 거절하고 두 번 미루는 사이에 약속은 점차 뜸해져 버렸다.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핑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나는 천천히 관계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사라져 버린 역할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내가 빠진 회사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서운함이 밀려왔다. 한때는 내가 있어야만 굴러간다고 믿었던 곳이었다. 그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어렵사리 아르바이트를 구한 다음에야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겉으로 자랑할 만한 일터는 아니었지만, 내가 안 가면 공백이 생기고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점이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날 마주한 사촌은 참 편안해 보였다. 혹여 말을 걸까 봐 조용히 TV 앞에만 앉아 있지도, 바쁜 척 황급히 문을 나서지도 않았다. 마치 한창 시절의 사촌과 재회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체념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낮추고 현실과 타협한 결과라고 여겼다. 모든 대화를 마치고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포기가 아닌 선택이었다. 사촌은 단번에 인생을 뒤집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쓰임새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묵묵히 완성해 가고 있었다.
퇴직 이후 우리는 종종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힌다. 더 많은 소득과 내로라할 성취로 무너진 입지를 다시 쌓고 싶어 한다. 돌아보면 사람을 지탱하는 바탕은 한 번의 반전보다 매일의 균형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이 아니라 스스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 아래에서 삶은 제 모양을 잡아 갔다. 사촌의 미소가 그 사실을 소리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사촌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화려하게 재기하지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촌의 모습에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성공담 이상의 단단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누군가 내게 퇴직 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촌의 얼굴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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