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경계를 지우는 광역 행정통합[기고/윤호중]

  • 동아일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충남에 사는 한 맞벌이 부부는 매일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다. 남편은 그 선 너머 대전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아내는 아이 손을 잡고 대전의 학원과 병원을 오간다. 충남과 대전을 오가며 생활하는 이들에게 지도 위의 경계선은 큰 의미가 없다. 주민들의 삶은 이미 시도의 경계를 넘어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생활’이라는 몸집은 어른처럼 커졌지만, ‘행정’이라는 옷은 여전히 아동복 그대로다. 버스 노선은 시도 경계에서 끊기고, 체육관이나 소각장 같은 시설은 서로 미루거나 따로 짓느라 예산만 낭비한다. 이러한 엇박자 속에서 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고 청년은 수도권으로 떠난다. 지방 소멸의 위기는 이렇게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행정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도를 하나로 합쳐 규모와 역량을 키우는 ‘광역 행정통합’은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통합이 이루어지면 주민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행정 칸막이에 막혔던 교통망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되고, 중복 투자를 줄여 절감한 예산으로 교육·돌봄·의료·교통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에 재투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면, 흩어져 있던 산업 역량이 결집되어 기업과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미 프랑스는 2015년 ‘노트르법(Loi NOTRe)’을 통해 우리의 광역시도와 유사한 ‘레지옹’을 22개에서 13개로 통합했다. 그 결과 평균 인구 규모는 약 290만 명에서 480만 명으로 확대됐고, 투자 유치와 산업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특히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은 행정·금융 중심지 리옹과 첨단기술·연구 도시 그르노블을 연계해 기술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냈다.

우리 정부도 통합을 선택한 지방정부가 흔들림 없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뒷받침하겠다. 통합 지방정부가 광역 전략을 주도할 수 있도록 4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조직과 인사 운영의 자율성도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을 부여해 지방이 국가 성장의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아울러 공공기관 이전과 국가 기능 재배치 과정에서 통합 지역을 우선 고려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규제 개선·세제 지원·행정 절차 간소화’로 이어지는 패키지를 통해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 기업과 청년이 모여들 수 있도록 지방의 기초 체력을 탄탄히 키워 나갈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각자의 이름으로 역사를 써 온 지역들이 하나로 뭉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지역의 정서를 존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고난도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과 인식으로는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지금 당장은 통합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관성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과감한 도전이다.

대통령 역시 광역 통합을 ‘지방 주도 성장의 상징적 출발점이자 국가 생존 전략’으로 규정하며,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통합 과정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끝까지 경청하며, 지방이 주도하는 이 담대한 도약이 반드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행정의 보이지 않는 선을 지우고 더 큰 하나로 나아가는 길을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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