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파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349〉

  • 동아일보

옛사람들은 학문에 전력을 다했나니,

젊어서 쌓은 공력이 노년에야 결실을 맺게 되지.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결국 얄팍할 수 있으니,

배운 것은 꼭 실천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도록.

(古人學問無遺力, 少壯工夫老始成. 紙上得來終覺淺, 絶知此事要躬行.)

―‘겨울밤 책을 읽으며 자율에게 보이다(야독서시자율·冬夜读书示子聿)’ 제3수, 육유(陸游·1125∼1210)


유난히도 느리게 흐르는 겨울밤, 등잔불 아래에서 시인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막내아들 자율(子聿)을 위해 조용히 붓을 든다. 여덟 편으로 이어지는 연작시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세상을 건너는 지혜 하나라도 더 보태려는 마음, 그 가만한 노파심에서 비롯된다. 학문에 힘쓰되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길어 올리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깨우침이다. 육유는 벼슬길의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훗날 애국 시인으로 불릴 만큼 중원 회복의 뜻을 품고 살았고, 자신이 남긴 책과 글만은 자식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염원했다.

국운이 기울고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대, 아들이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떤 굴곡을 겪게 될지 아버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그래서 글 속에 조심스레 마음 하나를 심어둔다. 책 속의 지식이 전부는 아니며 그것을 넘어서는 삶의 감각을 잃지 말라는 당부다. 자식이 살아가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꺼지지 않을 작은 불빛 하나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는 가르침이라기보다 아들이 맞닥뜨리게 될 삶의 신고(辛苦)를 위무하는 온기가 된다. 아버지의 노파심은 오래오래 따스한 불빛으로 남을 테다.

#학문#공력#지식#실천#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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