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호경]국민 불신 키우는 국토부-서울시의 부동산 엇박자

  • 동아일보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 발표가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대책’을 발표하면서 연내 추가 공급 대책을 예고했다. 태릉골프장 개발 등 과거 추진하다가 무산된 방안이 대책에 포함될 것이라는 소식에 시장 기대감이 이미 낮아진 상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발표 시점마저 늦어지고 있다.

대책 발표가 미뤄진 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서울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국토부는 서울 용산정비창 일대를 개발하면서 짓는 주택 수를 기존 6000채에서 1만 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는 사업 지연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속도를 포기한 물량 공급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토부와 서울시의 엇박자는 10·15 대책 발표 직후부터 감지됐다. 당시 국토부는 토허구역 지정과 관련해 서울시와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지만, 서울시는 “일방 통보”였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약 1개월이 흐른 뒤 오 시장은 김윤덕 국토부 장관을 만나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부는 10·15 부동산 대책의 부작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문제는 두 기관의 엇박자가 주택 공급에 치명적인 차질을 빚는다는 점이다. 국토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려고 제도를 고쳐도, 실행은 서울시 몫인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시가 반대하면 실제 현장에서 삽을 뜨는 것조차 어렵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개발 사업에 국토부가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인 2018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 여의도와 용산 통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집값 자극 우려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제동을 걸었고, 박 시장은 발표 7주 만에 계획을 무기한 보류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여의도와 용산 일대 재건축, 재개발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두 기관은 그해 9월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도 충돌했다. 국토부는 서울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공급하려고 했지만, 박 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보전해야 할 자산”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 반대로 풀지 못한 그린벨트는 지난해 11월에야 해제됐다. 두 기관의 엇박자 때문에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 소속인 박 시장이 국토부와 대립한 건 차기 대권 주자로서 정치적 계산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 오 시장은 야당 소속인 데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용산 정비창을 둘러싼 이견이 앞으로 더 큰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서울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서로 다리를 묶고 뛰어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한 몸처럼 움직여도 집값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 한쪽이 주저앉거나 호흡이 맞지 않으면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두 기관이 각자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서로 발목을 잡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다시 각자도생의 길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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