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김철중]“애국주의 고취하고 굿즈도 산다”… 연 14.9억 명 찾는 中박물관

  • 동아일보

美와의 갈등속에 방문 열기 고조된 中 박물관
자금성 내 고궁박물원… 연 관람객 세계 1위, 1600만 명
전승절-美 패권갈등 여파로 애국주의 분위기 고조
고고학 랜덤박스-청동 마스크 등… 각 박물관, 특색 굿즈 선보여

16일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관람객들이 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명·청나라 황제의 거처였던 자금성 내에 자리한 이곳의 올해 관람객은 세계 최대 규모인 약 1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16일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관람객들이 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명·청나라 황제의 거처였던 자금성 내에 자리한 이곳의 올해 관람객은 세계 최대 규모인 약 1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16일 중국 베이징 도심의 고궁박물원. 당시 내렸던 눈이 얼어붙은 추운 날씨였지만 8개의 입장 문마다 시민들이 긴 줄을 만들어 대기하고 있었다. 귀를 덮는 방한 털모자를 쓴 안내 요원은 “매 주말에는 입장에 최소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빨간 모자와 조끼를 맞춰 입은 단체 관람객이 많았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청나라 시대 전통 복장과 화장을 한 여성들, 명나라 의상과 관을 쓴 남성도 보였다.》

고궁박물원은 자금성 안에 있다. 이 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절 황제의 거처였고,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중국은 1925년 10월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쫓겨난 뒤 자금성 내 일부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개편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서화, 서적, 도자기, 공예품 등이 있고 자금성 내 최대 전각 태화전 등을 볼 수 있다. 일부 전각에는 보물과 시계 등 유물을 보관해둔 상설 전시관이 있다.

● 올해 1600만 명 찾은 고궁박물원

최근 한국에서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의 인기가 높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흥행 이후 한국 문화에 관심이 커진 외국인과 MZ세대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중국에서도 박물관 방문 열기가 뜨겁다. 특히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80주년이고, 미국과의 패권 갈등이 부각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 과정에서, 전통 문화유산이 가득한 박물관을 찾는 중국인이 더 증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람객 중에는 전국 곳곳에서 온 학생이 많았다. 한쪽에서는 네이멍구자치구 바오터우에서 온 중학생들이 빨간 모자와 조끼를 맞춰 입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학생 리모 씨는 “베이징에 오면 꼭 오고 싶었던 곳”이라며 “사진으로 보던 장소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신난다”고 했다.

고궁박물원은 2010년대 들어 연간 관람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에는 1700만 명에 육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줄었던 관람객 수는 2023년부터 다시 회복세다. 올해도 1600만 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연 900만 명 안팎. 국중박은 올해 처음 누적 관람객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의 많은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고궁박물원의 인기가 특별함을 알 수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체 박물관의 누적 관람객 수는 약 14억9000만 명. 2023년(12억9000만 명)에 비해 2억 명 늘었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8년 7억8000만 명과 비교하면 6년 만에 약 2배로 증가했다.

올해 국경절 연휴 기간(10월 1∼8일) 관람객 수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5% 더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전체 관람객 또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 10년간 박물관 약 3000개 생겨

국가문물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 전역의 박물관 수는 6833곳. 2012년 3866곳에서 약 2배 늘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평균 1.2일마다 신규 박물관 1곳이 문을 연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를 겪으며 국내 관광 자원 개발에 힘을 쏟았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중국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통제가 점점 줄어들자 국내 관광으로 눈을 돌렸다. 이로 인해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들도 지역 내 관광 자원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을 새로 짓거나 기존 박물관에 체험 공간, 증강현실 등 새로운 볼거리를 확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당국이 코로나19 격리 정책을 완전히 해제한 2023년부터는 이런 움직임이 더 가시화했다. 허난성 뤄양 박물관, 장시성 징더전의 도자기박물관, 칭하이성 시닝의 티베트 문화박물관 등 곳곳의 특색 있는 박물관에 사람들이 몰렸고 소셜미디어에서의 화제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 플랫폼 ‘시트립’을 통해 이뤄진 중소도시의 박물관 예약은 전체 박물관 예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홍색 관광(紅色旅遊)’ 효과도 여전하다. 홍색 관광은 공산당 관련 유적지를 여행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는 일종의 혁명지 순례 활동이다. 올해는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베이징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난징의 난징대학살추모관 등에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어린 시절부터 애국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중국 젊은층들은 성인이 돼서도 홍색 관광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 MZ 사로잡은 박물관 굿즈

고궁박물원 내 기념품 가게의 주요 상품. 중국의 여러 박물관은 톡톡 튀는 ‘굿즈’로 젊은 관람객을 사로잡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고궁박물원 내 기념품 가게의 주요 상품. 중국의 여러 박물관은 톡톡 튀는 ‘굿즈’로 젊은 관람객을 사로잡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최근 중국 젊은이들이 박물관을 즐겨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다양한 ‘굿즈’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전통 유물을 관람한 관람객들이 이를 재해석한 굿즈를 사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면, 이 특색 있는 굿즈에 매료된 다른 젊은층도 박물관을 찾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궁박물원의 경우 문창(文創·IP) 상품의 연간 판매액이 15억 위안(약 3200억 원)에 달한다. 의류나 화장품 업체와의 협업도 종종 이뤄진다. 고궁박물원과 콜라보한 제품은 업계 평균의 3배가 넘는 프리미엄이 붙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고궁박물원의 기념품 가게에서 젊은 여성들이 즐겨 산 제품은 외부 케이스를 전통 문양으로 디자인한 립스틱이었다. 한참 동안 립스틱 케이스 색깔을 고르던 대학생 루모 씨는 “소셜미디어에서보다 실제로 보니 훨씬 예쁘다. 고급스럽고 유행을 잘 타지 않을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2019년 허난박물관은 고대 화폐 및 청동기 모형을 담은 ‘고고학 랜덤박스’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후 쓰촨성 삼성퇴박물관, 저장성박물관 등도 자신들의 대표 유물을 랜덤박스 형태로 내놨다.

지난해 중국 맥도널드는 독특한 형태의 청동 마스크가 포함된 삼성퇴 유물을 모티브로 해 햄버거 신제품을 개발했다. 포장 봉투 또한 삼성퇴 유물 형태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계산우의 등불’(접이식 조명), 쑤저우 박물관의 ‘뚱뚱한 보검’(인형 및 열쇠고리), 간쑤성 박물관의 ‘동주 청동마’ 형태의 인형 등 굿즈 히트작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앞으로도 중국 젊은층의 박물관 방문 및 굿즈 구매 열풍 또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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