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이라는 화려한 무대의 허상 앞에 선 여인. 미모 때문에 궁에 들어왔지만, 그것은 행운의 열쇠가 아닌 족쇄였다. 치장이 무의미하다는 체념에 화장하려던 손길을 멈춘다. 울적한 마음과는 딴판으로 창밖은 화사하기 그지없다. 따스한 봄바람 속에 새소리는 왁자지껄 부서지고 햇살 아래 꽃 그림자는 겹겹이 드리운다. 세상은 저리도 환하기만 한데 슬픔은 오히려 배가한다. 급기야 소환되는 지난날 고향에서의 추억들. 친구들과 어울려 연꽃을 따던 시절, 노래와 웃음으로 가득했던 그 순간들이 궁중의 화려함보다 더 선연하게 아로새겨진다. 자유의 기억이 아름답게 느껴질수록 현재의 비극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선다. 도무지 위로가 될 수 없는 추억이기에 더 심란해진다.
시는 궁녀의 원한을 차용한 시인의 자화상이다. 유능한 인재가 벼슬길에서 잊히는 현실은 미녀가 총애를 잃는 운명과 다르지 않다. 봄빛 같은 삶을 꿈꾸면서 사대부들은 그 빛의 소재를 찾아 동분서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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