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통합이 필요한 시대, 예술의 역할[내 생각은/조기숙]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3일 23시 09분


원시시대 예술은 치유의 역할을 했고 개인과 공동체의 영적·정서적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통합의 기능을 했다. 이때 샤먼은 춤, 주문, 노래로 환자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이끈 ‘예술가’였다. 현대사회에서도 프리드리히 니체는 예술의 치유적 성질을 강조했다. 그에게 예술은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예술은 인간의 삶에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절망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며 삶을 변용시킴으로써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전통적인 관점과 달리 예술 치유는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감각과 지성의 재편을 통한 사회적 변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예술을 감각의 재분할과 정치적 해방의 매개로 정의한다. 감각의 재분할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체계를 재배치해 억압된 감각을 표면화한다. 예술이 자율성을 갖고 기존 위계를 해체하고, 감각적 경험의 평등한 분배를 통해 정치적 변혁을 일으켜 인간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이 사회에서 치유와 통합의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다. 그래야 이 불안한 시대에 예술로 인간인 시민, 나아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예술의 치유와 통합의 기능으로 빈부, 젠더, 국적 등 사회적 차이를 초월한 인류애와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이 아픈 시대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동안 사회의 주변부에서 소외당했던 예술이 중심부로 들어와 그 본연의 치유와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진 거리의 집회에서 시민들은 춤과 노래로 예술의 힘을 보여줬다. 앞으로의 정치 캠페인은 선거운동원들이 과격하게 구호를 외쳐대는 낡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참여자가 주체가 돼 춤출 수 있는 재미있는 축제여야 한다. 원시시대 샤먼처럼 춤과 노래로 이 사회를 치유하고 통합하는 지도자라면 얼마나 멋질까. 유권자의 마음은 구호가 아닌 감각으로 움직일 수 있고 이것을 잘하는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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