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세계에서 혼밥 가장 많은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0일 23시 18분


세계 여러 언어권에서 절친한 관계를 뜻하는 단어는 어원이 ‘함께 먹는다’인 경우가 많다. 친구를 프랑스에선 ‘코팽(copain)’, 이탈리아에선 ‘콤파뇨(compagno)’라고 하는데 둘 다 ‘빵을 나눠 먹는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중국어로 동료나 짝을 뜻하는 ‘夥伴(훠반)’도 ‘같은 불로 밥을 지어먹는 관계’라는 고대어에서 왔다. 우리말로 가족과 같은 말인 ‘식구(食口)’ 역시 마찬가지다. 직역하면 먹는 입, 해석하자면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함께 식사하는 관계를 귀하게 여겨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은 ‘혼밥’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게 최선이어서라기보단 효율과 편의를 우선시한 선택이다. 원치 않는 상대와 불편하게 같이 먹느니, 식사 약속 잡느라 신경 쓰느니 혼자가 편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보며 호젓하게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1인용 간편식과 배달 음식도 다양해져 혼밥은 더욱 손쉬운 선택이 됐다.

▷최근 발표된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혼밥 해서 행복하십니까’란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매년 140여 개국을 조사하는데 올해는 각국의 혼밥 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 주목했다. 한국은 저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횟수가 일주일에 평균 1.6회에 불과해 일본(1.8회)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이다. 점심, 저녁을 다 합쳐도 4.3회에 그쳤다. 중남미는 9회, 유럽은 8회가 넘어 우리의 두 배다. 공교롭게도 행복지수 상위 10위권은 핀란드를 필두로 한 유럽과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이다. 우리는 58위다. 지인과 식사하는 빈도와 삶의 만족도는 연관관계가 깊다는 게 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한국의 혼밥족 중에는 아동, 청소년들도 많다. 얼마 전 아이들이 혼밥을 할수록 행복감이 낮아진다는 연구 논문도 나왔다. 특히 저녁 식사를 편의점, 분식집 등에서 혼자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하교 후 각자 학원이나 독서실로 직행해야 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식사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학원 시간에 쫓기고, 과제·시험 부담 때문에 인스턴트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경향도 강했다. 가족과의 편안한 저녁 식사는 한국 아이들에겐 사치에 가깝다.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 식당에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나무 테이블이 주로 놓여 있다. 학생들이 함께 밥을 먹도록 안쪽부터 차곡차곡 채워 앉는 게 오랜 전통이다. 식당이야말로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고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라는 게 이 대학의 철학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진 안 하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과의 식사를 자주 즐길 수 있도록 여러 대안들이 나와야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혼밥#가장 많은 나라#식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