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목적[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43〉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1일 23시 09분


“부끄러운 줄 아시오!”

―추창민 ‘광해, 왕이 된 남자’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들! 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뭐라? 이 땅이 오랑캐에게 짓밟혀도 상관이 없다고? 명 황제가 그리 좋으시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가 바치시든가! 부끄러운 줄 아시오!”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하선(이병헌)은 신하들에게 그렇게 일갈한다. 명나라에 ‘사대의 예’ 운운하며 공물과 공녀는 물론이고 금나라와 치르는 전쟁에 2만 명의 군사까지 보내자는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다 듣다 하선은 참지 못하고 쏘아붙인다. 그는 말한다. “그대들이 죽고 못하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그런데 이렇게 군왕의 위엄을 보이는 하선은 진짜 왕이 아니다. 신변의 위협을 받는 왕이 허수아비로 세워 놓은 똑같은 얼굴을 가진 광대다. 처음 궁궐 생활은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지만, 차츰 적응해가면서 이 광대는 점점 왕이 되어 간다. 궁녀의 어려운 사연을 들어주면서 백성의 고충을 이해하고, 중전(한효주)의 오빠를 역모로 엮어 중전까지 폐하려는 신하들과 끝까지 맞서며, 백성들의 안위보다 사대의 예가 더 중요하다는 신하들을 꾸짖는다. 그저 광대에 불과했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자신 또한 고단하게 살아온 백성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귀를 갖고 있었다. 정치라고 하면 무언가 대단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백성을 위한다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세운다면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는 걸 하선은 보여준다.

실로 정치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복잡한 시국이다. 무수한 정의들이 가능하겠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그 본질적인 목적을 생각한다면 의외로 간단한 게 아닐까. 하선이 했던 것처럼.

#추창민#광해#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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