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DJ냐, 박근혜냐… 윤 대통령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5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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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답이 있다. 먼 과거까지 갈 것도 없다. 총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만 비교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대통령 중간평가인 4·10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대파, 아니 대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장 어째야 하는지.

집권 3년차 2000년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맞은 DJ는 대국민 특별담화를 냈다. “총선 민의는 여야가 협력해 나라의 정치를 안정시키라는 지엄한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소회를 밝히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여야영수회담을 제의했다. 패배 나흘 만에 TV로 생중계된 담화였다. ‘총재회담’ 대신 입때껏 안 써왔던 ‘영수회담’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시선을 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낸 대국민 특별담화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2000년 4월 18일자 지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낸 대국민 특별담화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2000년 4월 18일자 지면.
● DJ 대국민 담화-朴, 청와대 모두발언

집권 4년차인 2016년 4·13총선에서 1석차로 패한 ‘박근혜 청와대’는 달랐다.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놨을 뿐이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그 흔한 크리셰조차 없었다.

대통령 육성은 총선 닷새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다. 늘 그랬듯 단호한 표정으로 그는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했다. ‘국회 심판론’을 외쳤던 대통령 자신을 변호하듯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즉 국회가 변해야 한다고 일침까지 놨다.

당연히 영수회담 제의 같은 건 없었다. 6분 간의 모두 발언 중 총선 관련 발언도 꼴랑 45초였다. 여당에서조차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의례적인 사과라도 당연히 표명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물론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주로 하는 소리였지만.

● 국무회의 모두발언 택한 ‘윤석열 모델’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모델’로 가는 듯하다. 물론 현재까지 얘기다. 총선 패배 다음날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자들 앞에 나타나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말씀을 제가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다”더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44자(공백 포함하면 56자)를 읽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그래도 두 줄이었는데 이번엔 김밥처럼 고작 한줄이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고 했다. 2016년처럼 비서들 앞이 아니라 국무위원들 앞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자회견도 아니고, 국무위원들 듣는 형식을 왜 굳이 국민이 알아서, 새겨들어야 하는지 부아가 난다. 총선 압승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거듭 촉구했던 대통령과의 만남도 대통령실에선 아직 결정을 못한 눈치다.

패배 6일만에 하는 육성고백이면(이미 박근혜 때보다 하루 늦었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해주었으면 한다. 국민들 대신해 질문해줄 기자들이 없어 궁금증은 다 풀 수 없겠지만 제발 여당 내에서조차 답답하다는 소리는 안 나오게, 담아야 할 내용은 다 담아서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 대통령이 아니라 나라 걱정하는 국민을 위해서다.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한다

대국민 담화 일주일 뒤 열린 여야영수회담에서 DJ와 이회창은 ‘국민대통합의 정치’를 약속하는 공동발표문을 내놨다. 물론 다 지켜졌다고 하긴 어렵다. DJ는 한달 뒤 새총리에 자민련 총재 이한동을 임명하고 총선 과정에서 폐기되다 시피했던 DJP 연대도 복원했다(이회창은 DJ의 ‘인위적 정개 개편’ 에 분노보다 환멸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썼다). 이렇게 여소야대를 극복한 놀라운 정치력으로 DJ는 종국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것이다.

반성 할 줄 몰랐던 박 전 대통령이 그 뒤 어떤 길로 갔는지, 멀지 않은 역사가 말해준다(정말이지 그 끔찍한 단어를 쓰고 싶진 않다). DJ 반의 반 만큼의 정치력도 없어 보이는 윤 대통령이 ‘민생’만 강조해 현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들이 많다. 시중엔 윤 대통령이 과연 변할 것인가, 안 변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분분하다.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택한 것 보면, 그 오만해 보이는 스타일이 변할 것 같지가 않다.

“지도자가 통치스타일을 바꾸지못하는 것은 타고난 성향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노선을 추구함으로써 항상 성공해 온 경우에는 그것을 포기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 ‘윤통 스타일’ 때문에 정권은 총선에서 심판받았다. 포기해야 할 이유는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국무회의 모두발언 속에 “5월 10일 취임 2주년을 기해 반드시 기자회견을 마련하겠다”는 말이 들어간다면, 또 한번의 희망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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