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K철강… 밖에선 ‘무역장벽’ 안에선 ‘저가공세’[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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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힘들다는데, 왜?
미국서 상계관세 잇따라 부과
EU는 CBAM 시범 시행 시작… 안방에선 중국-일본 ‘저가공세’
반덤핑 제소도 업체별 견해차… “초격차 기술력으로 극복해야”

한재희 산업1부 기자
한재희 산업1부 기자
한국의 10대 수출품 중 하나인 철강 산업의 내우외환이 심화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는 한국 철강제가 국가보조금을 등에 업고 싸게 수출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로부터 상계관세를 부과받았고, 유럽에서는 탄소배출량 규제를 빌미로 사실상의 ‘관세 장벽’이 쌓이고 있다. 반면 안방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철강제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심각성을 느낀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철강업체들을 불러 업계 현황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간단한 처방으로 금세 해결될 병이 아니어서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대미 수출은 상계관세로 ‘울상’

25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5월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2021년산 열연강판에 대한 상계관세 최종 판정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6차 예비판정에서 포스코는 0.88%, 현대제철은 0.78%의 상계관세를 맞았는데 이에 대한 관세를 확정 짓겠다는 것이다.

상계관세란 수출국이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한 제품에 대해 수입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수입국 산업에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에 부과되는 자국 산업 보호 조치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2021년산 냉연·후판·도금강판 등에 대해서도 포스코 0.86∼1.60%, 현대제철에 0.76%∼1.08% 수준의 상계관세를 이미 부과한 바 있다. 심지어 미 상무부는 2022년산 철강 제품에 대해서도 상계관세 부과에 나섰다. 지난달 28일에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수출한 2022년산 후판에 대해 각각 2.21%와 1.93%의 예비 상계관세를 판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2022년산에 대한 판정이 속속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철강업체들의 2021년산 철강제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는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을 문제 삼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h(메가와트시)당 95.6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5달러를 밑돈다. 저렴한 전기요금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보조금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미국의 관세 장벽이 다시 높아질 우려가 있어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산 철강재 등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을 겨냥했지만 한국에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에도 철강 수입이 자국 경제 안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25%의 관세를 부과한 전력이 있다. 당시 한국 철강업계에도 그늘이 드리웠지만 미국과 협상해 쿼터(직전 3년 평균 수출 물량의 70%)만큼만 무관세로 수출하고, 이를 초과하면 관세를 내는 선에서 방어했다.

관세장벽을 피하려면 미국 철강 업체를 인수해 북미에 생산 시설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이도 쉽지 않다. 미국 정치권에서 자국 철강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4위의 철강사인 일본제철의 경우 지난해 12월 141억 달러(약 18조 원)를 들여 미국 3대 철강사인 US스틸을 인수 발표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14일 성명을 내고 “US스틸은 한 세기가 넘도록 상징적인 미국 철강회사였으며 국내에서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국 철강회사로 남는 게 필수적”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향후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통해 국가 안보에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거래 자체가 불허될 수 있다.

● 유럽에선 탄소국경조정세 신경 써야

유럽 수출에 있어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되는 탄소국경조정제(CBAM)가 당면 과제다. CBAM은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 기준치가 초과될 경우 이에 대한 탄소 요금을 추가 부가하는 규정이다. 지난해 CBAM 법안을 통과시킨 유럽연합(EU)은 올 10월부터 2025년까지를 일종의 준비 기간으로 삼고 탄소배출량만 의무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2026년부터는 CBAM이 전면 시행돼 수출품 제조 과정에서 기준에 넘는 만큼 배출권을 구해야 한다. ‘탄소세’가 추가 부과되기 때문에 사실상 관세와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CBAM이 우선 적용되는 국내 대상 업종(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중에서도 철강업계는 다른 CBAM 품목보다 탄소 배출이 많고, EU 수출액도 압도적으로 높다.

2022년 12월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EU 탄소국경세 도입으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연간 약 5309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철강 산업은 3620억3000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EU 철강 수출은 2022년 43억 달러(약 5조8000억 원)에서 지난해 48억 달러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고로에서 철강 제품을 생산할 때 철스크랩(고철)의 사용률을 높이고, HBI(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한 직접 환원철 제품)를 원료로 투입해 CO₂ 발생을 줄여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탄소중립’, ‘공정무역’ 등 모두 말은 우아하지만 결국 자기네 시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 입장에선 기술 초격차를 통해 수요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말했다.

● 안방에선 중국의 저가 공세

수출뿐 아니라 국내 시장도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신음하고 있다. 중국 산업계가 내수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를 국내서 소화하지 못하자 이를 외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열연강판은 179만381t으로 전년 대비 26.0% 늘었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1∼2월 중국의 철강 수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6% 증가한 1590만 t으로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수출을 독려하고 있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더군다나 일본도 엔화 약세를 앞세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철강제를 팔고 있다. 일본에서 들여온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량은 221만7213t으로 전년 대비 29.9% 늘었다. 최근 국산 열연강판(SS275 기준)은 t당 87만∼88만 원, 수입품은 이보다 6∼7%가량 저렴한 81만7500원 수준이어서 열연강판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중국산과 일본산 저가 열연강판이 시장 질서를 교란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포스코는 올 9월 종료되는 중국산 스테인리스강에 대한 24.82%의 반덤핑 관세 부과를 연장해 달라고 최근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해외에서 열연강판을 들여와 국내에서 다양한 철강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중견 제강사들은 반덤핑 제소에 부정적이다. 열연강판 가격이 오르면 원가 비용이 상승해 수익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이들은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이 늘어난 것은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피해로 포스코가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대형 철강사들이 가격을 올린 것이 수입 열연강판과 국산의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진 주된 이유라며 맞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입장 차가 크기 때문에 반덤핑을 놓고 국내서 단결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며 “일본산 제품은 엔저 현상이 해소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지만 중국산 열연강판의 저가 공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여 업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산업1부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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