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3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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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은 문재인 정부 때로 돌아가고
꼬리 긴 치명적 인플레 기다리고 있어
한계 기업·차주도 제대로 정리 안돼
윤석열 정부 경제는 F학점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집권하자마자 다주택자와 단기 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면제했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매물을 유도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이어 종부세 중과까지 폐지했다. 종부세와 양도세가 다 높으면 집을 보유하기도 양도하기도 어려워 문제이지만 집값 안정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다 깎아 주는 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집값 상승은 정책 대응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기간 저금리에서 비롯됐다. 금리 인하 때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못 쫓아갈까 봐 조바심을 내던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서는 미국과의 금리 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은이 찔끔찔끔 올린 금리마저도 금감원이 은행 창구 금리를 통제하는 바람에 인상의 효과도 크지 않았다.

‘영끌’ 대출은 아무 젊은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가 돈이 있고 본인들 스스로 상당한 소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20, 30대가 주택을 척척 보유했던가. 대부분의 영끌 대출은 정 안 되면 집 팔아 빚 갚고 분수에 맞게 전세 살면 해결되는 것이다. 세상에 쓸데없는 걱정이 영끌 대출 걱정인데도 윤 정부는 40, 50대 무주택 서민의 설움보다 영끌 대출에 더 부심했다.

이러니 문 정부 초에 비해 문 정부 말에 2배가 된 집값이 다시 올라가고 가계대출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다시 느는 건 당연하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문 정부 때의 최고가를 경신하는 집값이 속출하고 있다. 올라가는 집값을 못 잡은 정부는 많이 봤지만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 본다.

유가가 다시 올라 9월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는 것은 인플레가 아니다. 유가는 오르락내리락한다. 계절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도 인플레가 아니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내리게 돼 있다. 그러나 유가가 내려도, 농산물 가격이 내려도 한번 오른 식당 밥값이나 서비스 요금은 다시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인플레다.

유가나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는 지난해 7월 6.3%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했지만 여전히 3%대 수준을 유지하면서 올 3월 이후로는 총지수(각종 물가지수를 합한 지수)를 상회하고 있다. 현재도 미국 뉴욕보다 비싼 우유값이 이달 들어 인상되면서 유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수도권 지하철 요금 등 대중교통도 2차로 오른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도 거론된다. 전년도에 있었던 높은 상승률의 기저 효과도 곧 사라진다. 근원물가지수는 다시 4%대로 오를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을 선진국처럼 제때 인상했다면 근원물가지수는 4% 이하로 떨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플레는 끝물이 아니라 한창 진행 중이다.

역대 보수 정부는 현실화를 목표로 충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공공요금을 계속 인상해 왔다. 이 흐름을 결정적으로 중단시킨 것은 문 정부다. 당시 한은은 정부에 의해 왜곡이 심화되는 물가를 중대 사안으로 인식해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왜곡된 물가지수를 토대로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저금리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뉴노멀이 왔다는 등의 헛소리나 하며 돈을 푼 탓에 자산 시장에 엄청난 거품을 쌓았다.

그러나 문 정부만 탓할 수 없다. 윤 정부 역시 공공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으면서도 올 6월부터 인플레가 다 끝났다는 듯이 떠벌렸다. 윤 정부가 수십조 원씩 쌓이는 공기업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현실화한다면 물가가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요금을 올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꼬리가 긴 인플레다. 인플레가 장기간 누적되면 월급생활자나 연금생활자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

온갖 대출 부실이 수면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리 인상이 찔끔찔끔 이뤄졌는데도 그 정도다. 부실은 어느 정도 터뜨려서 거품을 꺼줘야 새 출발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장기간 저금리에서나 가까스로 생존 가능한 한계 기업과 차주, 그리고 그들에게 대출해 준 금융회사가 타격을 입는 건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틀어막고만 있다. 그러니 어느새 문 정부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정상적 집값으로 돌아간 데 더해 물가는 끝날 기약도 없이 오르고 그럼에도 경기 회복의 전망은 희미한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집값#윤석열 정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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