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 걱정… 소명의식 가진 직업, 사회적 보장해줘야” [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1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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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신소재’ 그래핀 연구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최근 물리학을 다룬 콘텐츠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해당 학문과 학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답과 오답의 차이마저 모호하게 느껴지는 요즘 시대에 인과의 엄밀함을 따지고 검증된 사실만을 수용하는 물리학이 대중에게 일종의 통쾌함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인 중에도 해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굵직한 연구 성과를 내는 물리학자가 많다.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56)도 그중 한 명이다. 김 교수는 ‘꿈의 신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선구적으로 발견한 공로로 최근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을 수상했다. 이 메달은 노벨상에 근접한 성과를 낸 연구자에게 주어진다. 김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그래핀 연구 업적으로 2010년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유력 후보로 꼽혔다.

이달 초 김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그래핀 연구의 현황과 계획, 의사 일변도의 이공계 진학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일문일답.》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걸 이해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며 물리학이 가진 매력을 설명했다. 김필립 교수 제공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걸 이해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며 물리학이 가진 매력을 설명했다. 김필립 교수 제공
―연구 분야인 그래핀은 어떤 물질인가.

“그래핀은 흑연의 원자 한 장을 이야기한다. 물질이 원자 한 장 단위가 되면 기존과 다른 성질이 나타난다. 전기와 열이 잘 통한다. 굉장히 가볍지만 질기고 화학적으로 안정돼 있다. 2004년 그래핀이 최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며 10여 년간 그래핀에 나타나는 물질적인 특성을 연구했다. 그래핀처럼 다른 물질들도 원자 한 장으로 나올 수 있다. 이를 2차원 물질이라고 하는데 2차원 물질을 또 붙여서 다른 물질을 만드는 이종접합을 연구하고 있다. 아주 작은 스케일의 2차원 물질은 양자적인 성질이 많이 나타난다.”

―잠시만, 양자적 성질이라는 게 무엇인가.

“물체들이 굉장히 작아져서 원자 단위로 가면 거시계에서 설명하는 물리와 성질이 달라진다. 이게 작은 것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관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원자 한두 개를 다룬다든가 거기서 빛을 뽑아낸다든가 해서 우리가 관측하고 이용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자기술을 조금 더 획기적으로 구현하려면 기술을 구현할 물질이 필요하다. 2차원 물질은 그 자체로 양자물질이면서 양자기술을 만드는 플랫폼이라 볼 수도 있다. 현재의 전자기기는 실리콘을 베이스로 하는 반도체 소자들이 쓰인다. 전자소자의 크기가 원자의 10배나 100배 수준까지 아주 작아지면 양자현상들이 증폭 되어 나타나는데, 이를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차세대 전자소재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과제다.”

―최근 물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다.

“물리학이 주는 매력이 있다. 근원적 질문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답을 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몇 가지의 중요한 명제에서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연역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에 관심이 커진 건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식이 결합된 현상 같다. 이런 관심은 다음 세대에 과학하는 마음을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자라 굳이 과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보는 눈을 갖추게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여러 가지의 창문이 있다면 물리학도 다른 관점을 주는 창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프랭클린 메달은 어떤 성과로 받게 됐는지….


“그동안 연구해 온 것에 대한 누적 개념으로 알고 있다. 그간 수상자를 보면 한 건의 연구 결과보다는 지금까지 연구해 온 것들에 대한 누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 같다. 굉장히 영광스럽다. 그래핀이 발견된 다음에도 2차원 물질과 그들의 이종결합에 계속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왔던 부분을 인정받는 상 같다. ”

―프랭클린 메달 수상은 보통 노벨상에 근접했다고 평가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영예로운 상을 주면 마다하지는 않는다(웃음). 연구자들은 학문을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에도 늘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상에 초연한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또 웃음). 다만 무언가에 근접한 학자라는 말은 위험하다. 그래핀에 대해선 이미 노벨상이 수여됐다. 그 분야의 노벨상이 다시 나오려면 그전의 연구 성과와는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학자도 많기 때문에 누가 근접했고, 누가 후보군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뭔가.

“어느 정도는 역사성이 있는 것 같다. 창의적인 연구를 앞서간 사람들이 보여주고, 그 뒤를 또 누가 따르고 하는 역사성을 말한다. 외국에서도 대가(大家)에게 훈련 받아서 혁신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한국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선도하는 결과들은 단발성인 게 아니라 점점 쌓여서 커지게 된다. 한국도 이제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리학도가 되는 건 언제부터 꿈 꿨나.

“돌아가신 조부께서 일제 때 물리학을 공부하셨다. 하지만 당시 물리학자가 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어서 결국 토목공학쪽 일을 하셨다. 아버지도 물리학을 하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집에 보면 물리학 책이 많았고, 관련 대중서도 있어서 어릴 때부터 접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학교에서 물리학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대학에서도 공부하게 됐다.”


―물리학은 흔히 ‘천재’가 하는 학문으로 불리는데 실제로 그런가.

“중고등학교 때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였다. 천재만 하는 학문이라는데 중고등학교 때 천재가 되긴 이미 글렀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천재는 정말 다른 종류의 천재들이다. 흔히 넘사벽이라고 부르는. 이것도 보니 물리학적인 용어다(웃음). 이런 학문을 할 때 오는 재미는 천재라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걸 이해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외국과 한국의 과학 교육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언가.


“한국 교육이 변하는 속도와 한국의 연구환경이 변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30년 전쯤 유학했을 때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지난 30년 사이에 한국의 교육과 연구에는 굉장히 큰 발전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이야기하는데 한국의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 빠른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의 교육이 외국에서 받는 교육과 다른가 싶기도 하다. ‘한국 학생은 소극적인 경우가 많고 질문을 안 한다’ 생각했는데 지난 5~10년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의사를 나타내기도 한다. 앞으로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선 이과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모든 사람이 도전의식이 없어지고 한 방향으로만 경도되는 것은 큰 걱정이다. 예전에는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이 과학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 학생들에게 학문 연구에서 오는 즐거움과 끊임없는 도전에서 오는 성취감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소명 의식을 가진 직업들의 경우 사회적으로도 일정 수준을 보장해 주거나 성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라나는 과학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책이든 유튜브든 과학을 접하는 건 좋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기초 다지기는 늘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또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 생각들이 중요하다. 문제 해결을 할 때도 빠른 시간 내에 정답을 내는 것만 추구할 게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방안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김필립
△1967년생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99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응용물리학 박사
△1999∼200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박사후과정 연구원
△2002∼2014년 미국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
△2014년∼현재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꿈의 신소재#그래핀 연구#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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