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확산에 ‘공유주거’ 관심 … ‘경험 중시’ MZ세대 新주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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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주목받는 공유주거…주방-식당 등 공유하는 원룸형태
회의실-운동시설 등 공용시설도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관리
1인 가구-20, 30대 젊은층 인기…“다양한 사람 만나 새로운 경험”
투자유치-규제완화 기업도 주목…“기존 전월세 단점 보완 가능”


《최근 전세사기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공유주거(코리빙·Co-living)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공유주거는 침실, 화장실, 샤워실 등 기본 시설은 홀로 쓰되 주방, 식당, 세탁실 등은 다른 입주자와 공유하는 원룸을 말한다.

공유주거는 개인이 임대하는 일반 전월세와 달리 기업이 전문적으로 운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주거 상품을 원하는 1인 가구와 20, 30대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공유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분양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도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공유주거 사업에 눈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유주거가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일반 전월세의 사각지대를 메워줄 새로운 주거 유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




이축복 산업2부 기자 bless@donga.com
이축복 산업2부 기자 bless@donga.com
서울 여의도의 한 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김태성(가명·45) 씨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공유주택에 살고 있다. 3년 전인 2020년만 해도 그는 아내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자가로 거주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무 특성상 ‘공유’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게 되며 석 달 정도 살아볼까란 생각에서 현재의 집에 오게 됐다.

주거 공간은 원룸 형태 전용면적 24㎡. 기존의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 전형적인 전용 84㎡ 구조인 문래동 집과 비교하면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 업무는 공유주거 내 회의실에서 보고 계절마다 바뀌는 옷과 물품은 간이형 창고에 보관한다.

김 씨는 슬리퍼만 신은 채로 한 건물에서 업무, 취미, 운동 등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모두 누리고 틈날 때마다 인근 성수동 일대를 즐길 수 있다는 데에 만족감이 크다. 그는 “고가의 장비를 갖춘 회의실을 별도 비용 없이 빌려 쓸 수 있다”며 “공유주택에서 필라테스 강사, 패션업체 대표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이들이 떠난 후에도 연락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세의 월세화-가격 상승에 인식 바뀌어

한국에서 공유주거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경부터다. 공유주거는 주로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월세가 비싼 해외 대도시에서 인기를 끌며 국내에 소개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는 데다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해 공유주거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 인근 시세보다 월세가 비싸고 규모가 작다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전월세 가격이 크게 오르고 고금리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월 서울에서 계약된 소형 오피스텔(전용 60㎡ 이하) 월세 거래 중 월세가 100만 원 이상인 비중은 10.8%에 이른다. 2021년 3.6%, 지난해 5.3%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서울 신촌역 인근 한 공유주택의 경우 전용 14㎡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약 100만∼120만 원(관리비 별도)이다. 인근 신축 오피스텔 같은 면적과 같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공유주택과 일반 전월세 주택 간 주거비 차이가 줄어들자 공유주거를 통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기업이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보증금이 수백만 원 수준으로 비교적 적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임대료 인상이나 보증금 떼일 우려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 힘입어 공유주거 상품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주로 역세권에 거주하며 출퇴근 편의를 따지는 사회 초년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강남·성수역(에피소드) △신촌역(맹그로브) △남영·선정릉역(홈즈스튜디오) △신도림역(커먼타운) △충무로역(디어스) 등 기존의 원룸 오피스텔을 대체하는 상품으로 들어섰다. 초기에는 빌라 수준인 수십 채 규모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20층 높이, 200∼300채 건물을 통째로 공유주거 시설로 꾸민다. 내부에 클라이밍장, 스크린골프장까지 들어서는 등 커뮤니티 시설도 다양해졌다.

● ‘경험’ 원하는 MZ세대 수요에 맞아


에피소드 강남 262의 공용공간에 있는 회의실 시설.
에피소드 강남 262의 공용공간에 있는 회의실 시설.
1인 가구가 늘고, 재택근무가 일반화한 최근 주거 트렌드도 공유주거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다. 2021년 기준 서울 1인 가구 비율은 36.8%다. 2010년(24.4%)에 비하면 10%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준으로, 3가구당 1가구가 1인 가구다.

여전히 다세대·연립 월세와 비교하면 주거비가 비싸 ‘그들만의 주거’라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는 최근 MZ세대의 경향과 맞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태현 홈즈컴퍼니 대표는 “공용공간에서 한국화 그리는 취미를 즐기는 입주민을 본 적이 있다”며 “방을 1∼2평 늘린다고 즐길 수 없는 취미인데 공유주거를 통해 취미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제공된 셈”이라고 말했다.

홈즈스튜디오 선정릉의 개인 생활공간
홈즈스튜디오 선정릉의 개인 생활공간
공유주거 시설에는 건물 내 카페, 회의실, 헬스장, 도서관, 테라스 등 공용공간이 있어 업무를 해결하거나 커뮤니티 활동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일본술 체험, 쿠킹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입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가구, 조명 등 인테리어 소품은 별도의 구독 서비스로 즐길 수도 있다.

공유주택 입주민인 장승남 씨(33)는 “내가 내는 월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편”이라고 했다. 서울 중구의 한 공유주택에 사는 이모 씨는 “이웃과의 교류가 없어진 요즘 시대에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공간”이라며 “거주 계약에 입주민이 범죄를 저지를 시 운영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입주민 관리가 된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 돈 모이고 규제 풀려…“성장 가능성”


공유주거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기업들이 잇달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 ICG는 2월 홈즈컴퍼니와 공유주거 사업을 위한 3000억 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공유주거 운용사 MGRV는 지난해 12월 125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정부도 관련 규제를 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2월 기존 건축법에 ‘임대형 기숙사’ 용도를 신설하고 민간임대사업자도 임대형 기숙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기존에는 학교나 공장만 기숙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주차장 규제가 오피스텔(가구당 0.5대)보다 완화된 기준(건축면적 200㎡당 1대)을 적용받아 건축 비용도 절감된다. 공유주거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은 개인 임대인 중심이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임대관리업이 없는 시장이었다”며 “공유주거를 통해 임대인과의 불필요한 갈등 등 기존 전월세 상품의 단점을 보완하려 한다”고 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주택 사업자 측면에서 보면 부동산 침체기에는 시행, 분양을 노리기보다 꾸준한 월세 수익을 낼 수 있는 임대주택 사업이 더 효과적”이라며 “코리빙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이런 점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주선 충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유주거는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타인과 교류하기를 원하는 1인 가구의 니즈(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이라며 “서비스 수준에 따라 가격도 다양해 교통이 편한 역세권을 중심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축복 산업2부 기자 bless@donga.com


#공유주거#mz세대#新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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