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풍류객[이준식의 한시 한 수]〈207〉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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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금 술잔. 작은 말에 실려 온 열다섯 남방 미녀.

검푸른 눈썹 화장, 붉은 비단 신발. 말소리 투박해도 교태로운 노랫소리.

이 화려한 연회에서 내 품에 취했으니, 연꽃무늬 휘장 안에서 내 그대를 어찌할거나.

(葡萄酒, 金叵羅, 吳姬十五細馬馱. 青黛畫眉紅錦靴, 道字不正嬌唱歌. 玳瑁筵中懷裏醉, 芙蓉帳裏奈君何.)

―‘술자리에서(대주·對酒)’ 이백(李白·701∼762)

이백이 고향 쓰촨(四川)을 떠나 대륙의 동남부 유람을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 천하를 주유하며 견문을 넓히고 명사들과의 교유를 도모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궁극의 목표는 관직에 올라 자신의 웅지를 펼치겠다는 것. 물론 이 꿈이 결코 망상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탐독했고, 시문 창작에도 열성적인 데다 천부적 자질이 있었고 세상을 읽는 지혜와 담력 또한 유별났던 그였다. 관리로 성공하여 가문의 옛 명성을 회복하는 것은 무역업으로 부자가 된 부친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번화한 강남의 도회에 들어선 시골 청년, 수십만 재물을 손에 쥔 풍류남아의 눈에 금릉(金陵, 지금의 난징), 양주(揚州)의 거리는 별천지로 비쳤을 것이다. 젊음의 광휘와 격정이 탱천하던 시기, 넉넉한 재물과 무한의 자유, 청년 이백이 거리에 즐비한 청루를 무덤덤히 지나칠 수 있었을까. 포도주와 금 술잔, 가녀린 미녀의 화사한 단장, 투박한 남방 사투리조차 교태스러운 노랫가락에 묻히는 열다섯 앳된 가희의 접대. 오가는 술잔과 웃음에 젖어든 사이 문득 자기 품 안에 곯아떨어진 미녀 앞에서 시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풋내기 풍류객의 안절부절못하는 당혹감? 아니면 미녀와의 환오(歡娛)를 눈앞에 둔 젊은이의 혈기 방장? ‘연꽃무늬 휘장 안에서 내 그대를 어찌할거나’라는 말이 못내 아리송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풋내기 풍류객#이백#술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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