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외면한 오스카, “범죄”라며 분노한 외신들[광화문에서/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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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올해 가장 큰 놀라움 중의 하나는 호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아카데미상 국제영화상 최종 후보에서 배제된 것.”(AP통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24일(현지 시간) 발표된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의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후 3년 만에 오스카 문을 두드린 한국 영화의 도전이 무산된 셈이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뒤 흥미로웠던 건 외신 반응이었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올해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힌 ‘헤어질 결심’이 결국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자 거세게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인 매셔블은 “칸영화제 선두주자였던 ‘헤어질 결심’을 무시하기로 한 아카데미의 결심은 절대적인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헤어질 결심’의 오스카 후보 탈락은 올해 가장 큰 퇴짜 중 하나”라며 “일부 사람은 ‘아카데미의 억지’라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담담히 소식을 전한 국내 언론과 달리 외신들은 흥분한 어조의 아카데미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박 감독은 ‘깐느 박’으로 불릴 정도로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영화인이다. 하지만 유독 북미에선 그의 감성이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0일 열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헤어질 결심’은 비영어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고배를 마셨다. 박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했지만 시상식을 중계한 NBC의 카메라에 박 감독의 모습은 단 1초도 담기지 못했다.

국내 영화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러 관계자들에게 이야기를 듣던 중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기생충’ ‘오징어게임’ ‘미나리’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 한국계 영화가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비영어권 작품 중 K콘텐츠에 상이 몰렸다”고 분석했다. 비영어권 작품 중 유독 한국영화가 상을 독식한 점이 이번 아카데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미권에서 상을 받으려면 통상 사회 문제를 깊게 다루거나 ‘오징어게임’처럼 창의적이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헤어질 결심’은 그 두 부분이 다소 약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벽을 넘든 넘지 못했든 ‘헤어질 결심’이 수작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특히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박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은 감탄을 거듭 자아내게 만든다. 극 막바지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찾으러 간 바닷가 장면에서 모래사장에 남은 파도 자국은 서래의 옆모습과 닮아 놀라움을 선사했다. 해준이 스마트폰 고도계를 활용해 서래의 남편이 사망한 절벽이 138층 높이인 걸 확인하는데 공교롭게도 ‘헤어질 결심’의 러닝타임은 138분이다. 관객들은 박 감독이 작품에 숨겨둔 의도를 찾아내고자 N차 관람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카데미의 결정은 아쉽지만, 아쉬움은 수작을 놓친 아카데미의 몫이다. ‘헤어질 결심’은 다음 달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비영어영화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유럽에서 강한 박 감독의 마법이 다시 한 번 통하길 기대해 본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헤어질 결심#오스카#외면#범죄#분노한 외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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