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한국의 미스터리 출산율…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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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핀란드 기자 출신 여성이 미국 남자와 결혼해 노르딕 이민자로 살게 된다. 미국 사회의 모든 것이 핀란드와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처음이 출생이다.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무료 진료, 출산 선물, 출산 휴가와 공립 어린이집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사회적 지원 체계를 갖춘 노르딕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모든 짐을 개인의 어깨 위에 지운다.

제왕절개 수술 후 6주 만에(이것도 관대한 편이란다) 출근했다 수술 부위가 터지고 생후 4개월 아기를 월 1200달러씩(지금은 더 비싸다) 쓰며 어린이집에 맡기는 미국 친구의 삶을 보면,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란 관점에선 핀란드보다 한참 뒤처진 나라다. 그는 노르딕 국가의 선진적 복지와 미국의 열악함을 조목조목 비교한 책을 쓴다. 제목은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건 이 책에서 미래적이라며 자랑한 거의 모든 제도가 한국에서 이미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떤 건 우리가 더했다. 예컨대 핀란드 유급 출산휴가는 10개월인데 한국은 유급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년(통상임금 80% 지급)이 법제화돼 있다. 교원, 공무원은 3년(1년까지만 유급)도 쓴다. 나라에서 아기 옷, 장난감 등을 한 박스 가득 선물해주는 핀란드 ‘엄마 상자’ 역시 ‘마더박스’ ‘해피박스’ 등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아빠 휴직도 도입돼 있고 0세부터 종일 무료 양육도 된다. 만약 핀란드가 ‘미국의 미래’라면, 한국이야말로 ‘미래 그 자체’여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충격적인 출산율이 그 증거다. 2021년 합계출산율은 세계 꼴찌 수준인 0.8명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나라로 꼽힌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8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아무 효과도 못 봤다. 예산과 제도를 늘릴수록 출산율만 더 뚝뚝 떨어지는 미스터리만 남겼다.

꼴찌 출산율은 우리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는 이상 신호다. 최근 미국의 한 리서치 업체가 선진 17개국에서 실시한 삶의 우선순위 관련 설문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 가족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꼽았다. 가정의 우선순위조차 이렇게 밀린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이타성이 발현되고 호의와 연대가 공고할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59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최하위 수준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낙관과 헌신, 사랑의 첫 결단인 출산율이 높을 수가 없다.

지금도 정부는 육아휴직 연장, 수당 인상 같은 정책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출산 시 대출 탕감 아이디어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이런 식의 정책조차 한국 사회가 앓는 심각한 병증의 단편으로 읽힌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뭔지 더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미래적인 정책이 와도 이 미스터리는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한국#출산율#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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