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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평남도당 해산, 간부 300여 명 숙청[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입력 2022-09-29 03:00업데이트 2022-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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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4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국가재해방지사업 총화회의에서 김정은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읽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지난달 초 기상관측 사상 최다 시간당 및 일일 강우량을 기록한 강남은 물난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 북한이라고 무사했던 것은 아니다. 평양 역시 대동강물이 인도까지 넘쳐나 낮은 지대가 물에 잠겼다. 북한 중앙TV에선 300∼400mm 국지성 호우를 예고하며 홍수를 철저히 방지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가난한 북한은 홍수를 피해갈 능력이 없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평양 인근의 탄광, 광산이었다. 북한 소식통에 의하면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탄광과 회창군 회창광산 등이 침수돼 광산 노동자와 주민 등 500여 명이 사망·실종됐다고 한다. 이 지역은 7월 말 호우에도 수많은 갱도가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졌다. 득장탄광은 북창화력발전소에 석탄을 대는 핵심 탄광인데, 이곳이 침수되자 평양 전기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당장 탄광을 살려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숱한 인력이 동원돼 복구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와중에 기록적 호우까지 겹치면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것이다.

이 사실이 보고가 되면 간부들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평안남도당 간부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 상황을 축소해 보고했다. 하지만 이게 김정은의 ‘조사장악선’에 의해 발각됐다. 아래 간부들의 보고를 신뢰할 수 없는 김정은은 ‘조사장악선’이라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는 비밀 조직을 가동하고 있는데 북한의 대다수 간부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른다.

화가 불같이 난 김정은은 즉시 평안남도 시·군당일군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장에서 평안남도 최고 책임자인 도당 책임비서와 2인자인 조직비서, 선전비서 등이 체포돼 끌려갔다. 피해지역 책임간부들까지 포함해 회의가 끝났을 때 체포된 간부가 무려 300여 명이나 됐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평안남도 당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중앙과 각 지방당 조직에서 간부를 선발해 새 도당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 회의 도중 김정은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노동당의 2인자 조용원 조직비서가 통솔하는 조직지도부 역시 산하 당 기관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조용원 조직비서는 김정은을 대신해 각종 회의를 주재하는 등 북한에서 김정은 패밀리를 제외하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결국 집사 신세일 뿐이다. 다행히 그는 해임되진 않았다.

이어 이달 4∼5일 이틀 동안 평양에선 국가재해방지사업총화회의가 열렸다. 김정은이 직접 참석했다. 북한 TV가 방영한 영상 속에서 김정은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이 아무리 격노하고,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숱한 간부들을 체포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의 자연재해는 경제난이 만든 인재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의 강하천 관리는 사실상 방치됐다. 하천 관리 기업소들이 보유한 차량과 굴착기 등 장비는 장부에만 올라 있는 고물이 태반이다. 김정은이 매년 거창하게 벌여 놓는 평양 건설 등 각종 공사판에 동원할 장비와 연료, 인력이 부족한데, 강하천 관리에 투자할 간부가 있을 리 만무하다. 뙈기밭 때문에 벌거숭이가 된 산은 비만 조금 와도 무너져 내린다. 이 때문에 북한은 폭우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다.

2년 전 태풍 ‘마이삭’이 북한을 통과했을 때도 함남 검덕지구에선 수천 채의 집이 홍수로 사라졌다. 강원도 김화군에선 임남저수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긴급 방류를 시작했는데, 수천 명의 김화읍 사람들이 이를 피하려 뒷산에 올라갔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민둥산이 붕괴되는 바람에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2016년 함북 북부 지역 홍수, 수천 채의 집이 파괴된 2015년 나선시 홍수 등 북한의 폭우 피해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국가재해방지사업총화회의 직후인 8일 김정은은 동서해 연결 대운하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처럼 강바닥을 파내 평양의 홍수까지 막겠다는 일석이조 구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운하 건설이 오히려 더 큰 홍수를 부른 사례도 많다. 북한의 우물 안 수리학계 수준도 미덥지 않지만, 김정은의 의도에 반해 말할 수 있는 과학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운하를 건설할 힘이 남아 있는지는 더 큰 의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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